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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24. 2023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2023. 01. 24.  07:07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소통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할 때가 그렇다. 분명 메뉴판에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 주문했는데도 다른 음식이 나온다. 손님이 많을 때 간혹 일어난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니 착각해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 키오스크를 활용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키오스크의 장점은 주문이 잘못 들어갈 일이 없다는 것이다. 손님은 음식 이미지를 보고 종류와 숫자를 정해 주문할 수 있다. 주방에서도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만들어 내면 된다. 기계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직원의 실수는 최소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손님은 키오스크를 통해 적어도 주문만큼은 통제가 가능해졌다. 주문과정의 불통으로 인한 직원과 얼굴 붉힐 일은 줄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다 보니 상대방과 충돌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타인의 감정이 그렇다. 타인의 범위는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내 감정은 내 선택에 따른다. 내가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황과 반대되는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상대방의 실수로 화가 나야 할 상황에서 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화내지 않을 수 있다. 이렇듯 내 감정은 오롯이 내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바꿔 말하면 상대방의 감정도 온전히 상대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타인의 감정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믿는 것과 같다. 애초에 통제의 대상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감정과 함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고친다는 건 내가 개입해 개선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사물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도구를 활용해 고장 난 부분은 얼마든 고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가령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놓는 남편, 화장을 지우지 않고 자는 아내, 책상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자녀의 태도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당장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말귀를 알아듣는다고는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일 같은 잔소리를 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다. 그러니 이런 태도 또한 애초에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벌이와 상관없는 일을 해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든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조건에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기보다 돈을 벌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가치관과 사회 관습을 좇아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다고 할 수 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쉽게 얻는 이들도 있다.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해도 노력에 따라 원하는 걸 손에 쥐는 경우도 있다. 부모나 주변 사람은 조력자일 뿐 그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 자녀의 뜻을 무시하고 부모가 정한 미래는 욕심일 뿐이다. 자녀의 미래를 부모 손으로 재단할 수 있다는 믿음은, 컵라면에 얼음물을 부어 3분 만에 익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부모의 잔소리이다. 자녀를 낳고 키워보기 전에는 몰랐다. 부모님이 왜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지. 자녀를 키워보니 100퍼센트 이해된다. 홍시를 먹으면 홍시맛이 나는 것처럼 부모가 되면 당연히 잔소리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내가 통제할 대상이 아니다. 그저 듣고 난 뒤 따를지 말지만 선택하면 된다. 부모말을 잘 들으면 실보다 득이 많을 테고, 그렇지 않으면 후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처럼 애초에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니 당연히 충돌이 일어난다. 물론 이면에서는 선의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없으면 잔소리도 없다. 조금이라도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니 결국 부딪히는 거라 생각한다. 이때 필요한 게 통제보다 인정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고, 태도를 받아들이고, 꿈을 지켜봐 주고, 잔소리를 기꺼이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 태도, 꿈, 잔소리를 당장 부정한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공감해 줌으로써 상대는 나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안 상대방은 어쩌면 스스로 변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 양말을 똑바로 벗어 세탁기에 넣고, 화를 가라앉히고, 미래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잔소리 횟수를 줄일 수도 있다.  


사람 사는 게 키오스크로 주문하듯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면 부딪칠 일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과 생각이 있다 보니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한다. 중요한 건 상대방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자세이다. 우리는 자신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하물며 상대방이 내 입맛에 맞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2023. 01. 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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