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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23. 2023

우리는 왜 해돋이를 보러 가지 못할까?

2023. 01. 23.  07:09


아내와 나는 막내다. 아내는 형제 중 막내답게 제일 늦게 결혼했다. 나는 두 형을 제치고 먼저 결혼했다. 결혼 이듬해 첫째가 태어났다. 그때부터 명절에는 할머니가 손녀를 보기 위해 당연히 방문하는 걸로 무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큰형은 결혼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작은형이 몇 년 뒤 결혼했지만 이미 제주도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 차례 음식은 자연히 아내 몫이 되었다. 매번 어머니의 지휘아래 음식을 준비했다. 그나마 내 주변 친척과 연 끊고 산지 오래여서 오가는 번거로움은 없었다. 


4년 전 어머니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모이는 장소가 바뀌었다. 여전히 작은형은 제주도에 살았고, 큰형은 가족을 남기지 않고 홀로 먼 길을 떠났다. 지금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어머니와 우리 가족만 모여 조촐하게 차례를 지내고 밥을 먹는다. 음식 준비는 대부분 어머니 몫이다. 명절 전날 서둘러 가도 혼자 사부작사부작 웬만한 음식 준비는 다 끝내놓는다. 당연히 늦게 가면 두 손이 무안해진다. 우리끼리 먹는다고 해도 음식양이 적지 않다. 워낙 손이 큰 분이라 잡히는 대로 만들다 보니 한 두 끼만에 없어지는 일은 없다. 작년 추석에 만든 전을 얼마 전까지 먹었으니 말이다. 명절 음식은 만드는 양을 떠나 모여서 일한다는 자체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편하지 않고 부엌일을 함께 하는 건 더더욱 불편할 따름이다. 


시댁을 꼭 먼저 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아내도 친정에 가고 싶은 건 당연하다. 미안하게도 아직까지 친정에 먼저 간 적은 없었다. 아내는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배려해 때마다 시댁을 먼저 챙겼다. 장모님도 혼자 계시지만 워낙 먼 곳에 계셔서 명절에 찾아갈 엄두가 안 난다. 장모님도 당신이 올라오는 게 서로 편하다며 가끔 오시지만 그마저도 녹녹지 않다. 매번 묵묵히 제 역할해주는 아내에게 고마웠다. 그래서 친정을 먼저 가자고 슬쩍 말을 꺼내본 적도 있었다. 아내는 자기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테고, 친정 오빠들 역시 원하지 않을 거라면 선을 그었다. 큰딸이 15살이 된 올해 설까지 아내는 시댁을 먼저 챙겼다.


명절에 모여도 특별히 할 게 있는 건 아니다. 음식 준비와 차리고 먹고 치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다. 남들은 이곳저곳 나들이도 잘 다니는 데 우리는 쉽지 않다. 가자고 말을 꺼내지만 정초부터 돈 쓴다고 타박만 받는다. 어머니에게 차례 지내지 말고 연휴 동안 여행 가자면 대답만 할 뿐 결국 늘 하던 대로 차례를 지낸 게 여러 해째다. 아내도 내심 여행을 바랐다. 먼저 말을 꺼낸 적도 있었지만, 중간에서 내가 어영부영하느라 늘 떠나지 못했던 것 같다. 차례를 지내는 의미를 생각하면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맞다. 어머니도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는 건 결국 자식 손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에서다. 보이지 않는 조상들에게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 그 보상이 당신 아닌 자식 손자에게 갈 거로 믿으면서 말이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도 차마 거르지 못하는 것 같다. 올 설도 얼레벌레 차례를 지내고 말았다.


제 역할을 다하고 막걸리와 무알콜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TV에서 일출 장면이 나왔다. 아내에게 해돋이 보러 가자고 즉석에서 던졌다. 막걸리 반 병을 마신 뒤라 호기심이 동하나 보다. 두 딸에게 같이 갈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안 간단다. 아내도 나도 김샜다. 그러고 보면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해돋이를 본 적이 없었다. 바다로 여행은 갔지만 일출을 본 적은 없었다. 아내도 지금껏 바다에서 일출을 본 적 없다고 한다. 연휴에 하루 정도 시간 내 여행 갈 수도 있다. 가까운 바다를 찾아 해돋이를 보고 올 수도 있다. 말은 꺼내지만 정작 몇 시간 걸린다, 어디가 막힌다, 잠은 어디서 자냐는 등 고민만 잔뜩 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물이 차면 넘친다. 내 생각에 나도 아내도 앞으로 조금 다르게 명절을 보내고 싶다. 물론 어머니의 동의가 필요하겠지만 못 넘을 산은 아닌 것 같다. 올 추석이나 내년 설에는 가족끼리 해돋이를 보러 갈 수 있길 바라본다.    


2023. 01. 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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