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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6. 2023

주말에 뭐 하셨어요?

2023. 02. 06.  07:35


금요일 오후,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알림이 뜬다. 대관령 선자령에 눈이 왔다고 퇴근 후 캠핑 가자는 번개였다. 다양한 취미를 가진 S의 제안이었다. 미니멀 캠핑이라며 최소한의 장비만 갖고 야박하는 게 유행이란다. 그곳의 백미는 한 밤 중 쏟아질 듯한 별을 감상할 수 있다며 다른 친구를 유혹했다. 선동은 했지만 결국 다음 날 올린 사진을 보니 혼자 갔었나 보다. 가정과 직장이 있는 우리 또래가 주말을 이용해 혼자만의 시간, 그것도 훌쩍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 덕분에 중년의 무게를 버텨내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토요일 오후, 두 딸은 집을 비웠다. 아내는 미장원에 갔다. 집을 지키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머리를 다 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없는 틈에 무얼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 대답이 빨리 안 나왔다. 머뭇거리니 일단 집으로 가겠단다. 집에 온 들 당장 할 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침에 아내가 순댓국이 먹고 싶다고 말한 게 생각나 물었다. 그러자고 대답한다.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걸어서 5분. 오후 5시, 주인만 지키고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순대만, 아내는 기본을 시키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출장 중 있었던 일, TV에서 본 사건, 아내의 주변 사람, 아이들 걱정 등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대화는 순댓국을 먹으면서도 계속됐다. 아내가 먹는 중간 몇 테이블 건너 앉아 있는 주인 귀에 안 들릴 목소리로 국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고 속삭인다. 냄새를 잘 못 맡는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아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닌지 그냥 먹었다. 순댓국을 사이에 두고 30분 남짓 데이트를 즐겼다. 주말 오후, 짧은 시간이지만 맛있는 걸 먹으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 시간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다. 


친구 S처럼 혼자 있는 시간, 나처럼 아내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시간이 한 주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것 같다. 누구는 늘어지게 자는 늦잠일 수도 있고, 누구는 간섭 없이 몇 시간 동안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어떤 시간이든 저마다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휴식은 피로를 풀고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시간이다.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취미 다운 취미, 대화 다운 대화가 시간을 보다 가치 있게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5년 전 만해도 취미도 없었고 제대로 된 대화도 못했다. 시간을 무의 하게 버리는 날이 더 많았었다. 그러다 읽고 쓰기 시작하면서 취미도 생기고 대화 시간도 조금씩 늘고 있다. 취미라고 해봐야 읽고 쓰는 것이지만 적어도 5년처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게 되었다. 대화도 듣고 말하는 방법을 이해하고부터 시간이 늘었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주로 아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잘 들어서인지 아내도 점점 말이 많아진다. 실컷 말하고 나면 아내도 나름 스트레스가 풀리는 눈치다. 이런 대화가 서로의 마음에 안정을 찾고 피로를 푸는 시간이지 싶다. 


40대 중년이다. 밑에서 위에서 치이는 때이다. 버티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스스로 마음의 안정과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저마다 의미 있는 행동을 통해 휴식하고 또다시 활력을 회복해야 한다. 월요일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고질적인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주말 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피로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월요일 아침이라면, 적어도 주말 나를 위한 시간과 활동을 하나쯤 가졌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쌓이면 일과 자신을 조금씩 분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3. 02. 0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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