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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08. 2023

오지 않은 날들을 준비하는 자세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과학 기술이 늘려준 것은 수명이 아니라 노년이다." - 파스칼 브뤼크네르


어느 때부터는 숨만 잘 쉬어도 80세까지 살 수 있는 시기가 올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 기술 덕분에 말이다. 유럽인의 평균 수명이 30세였던 게 불과 300년 전이다. 300년 만에 50년을 더 살게 되었다면 150세까지 사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오래 사는 건 축복일까, 불행일까?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몸도 건강하고 할 일도 있다면 오래 사는 게 축복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불행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숙제를 준 거나 마찬가지다. 늘어난 수명만큼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   


내가 속한 조직의 나이 비율은 팽이 모양이다. 팽이 중심에 50대가 자리해 있다. 그들에겐 길어야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 운이 좋아 60세에 퇴직해도 20년의 노년을 보내야 한다. 2년 도 아니고 20년을 얼마나 양질의 삶으로 살 수 있을까? 몸이 건강하고 할 일도 많다면 별 걱정 없다. 내 사업을 시작해 운과 실력으로 왕성하게 활동한다면 20년이 두렵겠는가.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대부분이다. 몸은 날이 갈수록 잔고장이 날 테고, 할 수 있는 일도 줄고, 찾아주는 사람도 없어진다. 의미 있는 삶이기보다 살아내기 위해 근근이 버텨내는 삶이다. 


"45세 이후의 연약한 신체는 자질구레하게 손볼 데가 많다. 고장 났지만 가까스로 수리해서 다음 사고가 날 때까지 몰고 다니는 근사한 구형 세단 같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중


3만 개 이상의 부품이 조립 과정을 거쳐 자동차가 완성된다. 마치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사회에 필요한 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져 방금 출고된 새 차는 모든 게 완벽하다. 완전 무결한 상태로 도로 위를 달린다. 넘치는 힘을 과시도 해보고 자체가 닳을까 애지중지한다. 밟는 대로치고 나가는 30대의 우리 모습과 닮아 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 잔고장 나고 때도 낀다. 차제에 번뜩이던 광도 빛을 잃어간다. 관리하는 정성도 시들해진다. 더 성능 좋은 차가 치고 나온다. 서서히 뒤따르는 차에 따라 잡힌다. 추월차선을 내어주는 4,50대이다. 그나마 그때 그렇게라도 굴러가는 차가 있다면 다행이다. 성능도 떨어지고 달릴 도로도 없는 낡은 세단, 60대이지 않을까. 남은 평생은 두 발에 의지해 살게 된다.  


"이제 죽음은 삶의 정상적인 끝이 아니라 고장 나서 멈춘 것을 고치지 못한 실패처럼 여겨진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파스칼 브뤼크네르


기술의 발전은 자동차의 마지막도 결정했다. 오래되고 낡아서 차를 바꾸는 사람은 드물다. 더 강력한 출력, 더편리한 기술로 무장한 새 차가 수시로 출시되고 때때로 차를 바꾼다. 멀쩡한 차가 폐차가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정상적인 생의 주기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삶도 이와 비슷해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마다의 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피해 갈 수 없는 노년의 시기를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에 따라 성공한 삶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다. 어디가 고장 난 지도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내가 나를 아는 만큼 나를 위해 산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은 내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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