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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Feb 12. 2023

당구와 글쓰기의 상관관계


고등학교 1학년 때 당구를 쳤다. 30으로 시작해 150이 되기까지 1년 꼬박 걸렸다. 구력을 올릴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자기보다 높은 구력과 게임하는 것이다. 그 당시 250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먼저 게임을 제안하는 친구는 드물었다. 대개 200 언저리에서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은 몇몇이 도전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먼저 한 게임하자고 말하지 못한 건 질게 뻔한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과를 정해놓으니 도전할 이유도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해보기 전에는 결과는 알 수 없다. 10번 도전하면 1번은 이길 수도 있었다. 그 한 번 덕분에 실력이 늘고 자신감도 올라간다. 세상 어떤 일도 시작과 함께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일은 없다. 모든 시작은 결과를 알 수 없기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 만약 지금 무언가 도전을 앞두고 있다면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일단 시작했으면 좋겠다. 당구 30이 300을 이기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5년 전 처음 글쓰기 시작했을 때 목적을 가졌던 건 아니다. 할 수 있겠다는 치기에서 시작했다. 몇 달 만에 내 수준을 깨달았다. 어쩌면 치기에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준비가 된 뒤에 시작하겠다고 주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체 엉뚱한 준비만 했을 수 있다. 당구 실력을 올려주는 건 나보다 나은 실력자와 게임을 통해 배우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어떤 글이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엉망인 글이라도 써야 고치는 과정에서 내 수준과 배울 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 수준을 깨닫고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더 다양한 책을 읽었다. 글쓰기를 다루는 책은 물론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심리, 삶에 대해 고민해 보는 철학,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자기 계발 등. 내가 쓰는 글이 곧 나를 말해준다. 내 생각의 크기가 글의 깊이를 말해주었다. 생각의 크기를 키우려면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한다. 모든 걸 직접 경험하면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책을 통해 얻지 못할 경험은 없다면서. 맞는 말이다. 책에서 얻지 못할 건 없다. 다만 책을 선택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는 하다. 책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통찰을 얻지는 못한다. 단지 매일 조금씩 어제보다 나아질 뿐이다. 모든 도전에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듯, 매일 책을 읽는 것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정해져 있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고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아느냐에 따라 나의 가능성은 무궁하다.


모든 시작은 두렵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다. 잘 쓰지 못하면 안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좋은 글의 기준은 무엇이며 잘 쓰기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했는지? 나도 착각에서 시작했다. 책을 읽으니 당연히 글을 잘 쓸 줄 알았다. 읽는 것과 말하는 것 쓰는 건 다 다르다. 읽을 줄 안다고 잘 쓰지 못하고, 말을 잘한다고 잘 읽는 것도 아니고, 잘 쓴다고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잘 읽으려면 읽는 연습이 필요하고, 잘 쓰려면 많이 써야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수준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더 나은 걸 배우겠다는 선택을 해야 한다. 30이 300에게 한 게임하자고 당당하게 요구하듯 말이다. 


망치질을 많이 당한 조각상이 섬세해지듯, 당구 큐대를 많이 잡아봐야 실력이 는다.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 남들보다 빠르게 자신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모든 도전은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모할수록 더 빨리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제 막 글쓰기 시작했거나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면 조금은 무모해질 필요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모해진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도전하는 과정을 남과 비교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30이면 30 답게, 300이면 300 답게 게임을 즐기면 된다. 남에 눈에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당구 실력을 키우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결과를 예측하지 말고 일단 덤벼드는 것이다. 부딪치고 깨지고 다시 시도하면서 제 모습을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글이 좋아지는 것도, 당구 실력이 느는 것도 결국 내가 좋아서 해야 한다. 남이 시켜서 하면 얼마 못 가 포기하거나 정체되고 만다. 내가 좋아서 하려면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하려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꾸준히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 하다 보면 더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니면 나와 맞지 않는지도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꾸준히 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처음보다 나아진다는 점이다. 당구처럼 실력을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게 글쓰기이다. 남들의 평가는 그저 참고할 뿐이다. 그들의 평가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기도 하다. 중요한 건 스스로 더 나아졌다고 자부하고 더 당당하게 써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평가보다 나의 만족이 우선일 테다. 내가 나를 아끼면 그만이지, 남의 말이나 평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당구계의 불문율이 하나 있다. 어느 고수도 30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멋모르고 덤비는 그들을 당해낼 고수는 없다. 그러니 좋은 글 쓰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일단 막무가내도 덤벼보길 권한다. 그렇게 쓰다 보면 분명 한 계단씩 올라가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재미에 또 쓰고 쓰다 보면 또 올라가고, 그렇게 계속 쓰면 삶도 점차 나아지고 조금씩 글에도 자신감이 붙을 거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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