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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r 31. 2023

꿈으로 가득 찬 너에게


며칠째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조르는 둘째. 어떤 내용인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모 기획사에서 온라인으로 1차 지원을 받고 합격자에 한 해 오프라인 오디션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차 오디션은 동영상을 올리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둘째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곡을 할지 정했니?"

"아니."

"가장 자신 있는 춤과 노래는 있니?"

대답을 못합니다.

"노래도 안 정하고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어?"

또 대답을 못합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이어서 물었습니다.

"채윤이가 정말 자신 있는 노래 한 곡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게 춤추며 노래 부를 수 있는 곡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빠는 채윤이가 춤과 노래 연습에 열심히인 건 알아. 오디션은 다르거든. 그들은 네가 올린 영상만 보고 판단해. 네가 주말마다 연습한다는 걸 알지 못해. 채윤이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 적어도 이 곡은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한다고 아빠는 생각해."

결국 눈물을 흘립니다. 마음이 가라앉길 기다렸습니다. 눈물을 닦아낸 걸 보고 끝으로 덧붙였습니다.

"연습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 들면 말해. 그때 동영상 찍고 지원해 줄게. 그리고 연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잘 생각해 봐. 채윤이가 정말 간절하다면 아빠 눈에도 보일 거야. 그러면 아빠도 채윤이 뜻대로 해줄게."


11살에 꿈을 가졌다는 게 대견했습니다. 저는 그 나이 때 꿈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TV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공부를 잘하지도 취미가 있는 것도 남다른 특기도 없었습니다. 그런 저보다는 더 나은 11살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꿈이 있었고 간절히 바랐다면 부모님을 귀찮게 했을 겁니다. 부모님도 간절한 저를 위해 기꺼이 또 다른 희생을 감내하셨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 때문에 철이 일찍 든 것도 아닙니다. 철이 안 들어서 꿈이 없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저의 의지였지만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더 큰 꿈을 가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마흔셋에 간절하게 하고 싶은 걸 찾았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무언가를 계속 해오기는 했습니다. 간절함이 부족했는지 제대로 해낸 게 없었습니다. 5년째 같은 바람으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건 그만큼 절실하다는 방증일 겁니다. 마흔셋에 꿈을 갖게 된 게 처음에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동안 꿈이 없이 살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으니까요. 한편으로 더 늦기 전에 꿈을 찾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저는 물론 가족에게도 당당해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걸 좇아 열심히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모습을 보고 두 딸도 자기만의 꿈을 갖길 바랐고요.


하고 싶은 걸 찾고 시작했습니다. 시작한다고 당장 성과가 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연습생처럼 실력을 갈고닦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시간을 버티면 또 기회가 올 거로 믿으면서요. 매일 읽고 쓰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많이 읽고 잘 쓰는 게 꿈에 닿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으면서요. 잠을 줄이고 짬짬이 시간을 활용하고 주말에도 어김없이 읽고 쓰기를 이어왔습니다.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글을 남겼습니다. 한편으로 누군가의 눈에 띄어 다른 기회가 생기길 바랐습니다. 그런 바람이 전해졌는지 나를 알리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또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재주이지만 필요한 이들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연습생처럼 실력을 다져야 하는 게 제 일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숫자로 실력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요.


둘째는 2년 전부터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동영상을 찾아보며 혼자 춤 연습을 했습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주말마다 만나 걸그룹을 결성했습니다. 노래도 잘해야 한다며 방 안에서 열창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응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언제까지 꿈으로 이어갈지 두고 봅니다. 사춘기가 오면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건 그때 일입니다. 여전히 진심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입니다. 꿈이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간절하게 무언가 바라고 노력했다는 기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커서 어떤 꿈을 갖게 되더라도 그만큼 또 절실함이 생길 테니까요. 그리고 시작할 용기도 이미 가졌으니까요.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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