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Apr 01. 2023

남자가 알 수 있을까요? 모녀사이


둘째 방을 만들어주기 위해 몇 주째 애쓴 아내. 10년 동안 모아 온 둘째의 수집품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75리터 쓰레기봉투 두 개, 매주 분리수거함에 버려진 수많은 장난감들. 자신의 허락 없이 종이 한 장도 못 버린다는 둘째와 매번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그만큼 자기 물건에 애착이 강한 아이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일일이 다 기억하는 신비한 능력도 겸비했고요. 그러니 버리는 데만 3주가 걸렸습니다. 비우고 나서야 책상을 새로 들였습니다. 침대, 책상, 옷장까지 갖춘 자기 방이 생겼다며 만족해합니다. 4년 전 먼저 독립한 큰딸 방에도 낡고 작은 책상을 새것으로 바꿔줬습니다. 제법 덩치도 커졌고 더 자랄 걸 대비해서 말이죠.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책상 정리로 바쁩니다. 그동안 갈 곳을 잃었던 살림살이에 자리를 찾아줬습니다. 한참을 자기 방에서 안 나옵니다. 밥 먹을 때가 돼서야 흐뭇한 표정으로 밥상에 앉습니다. 큰딸은 별 감흥이 없어 보입니다. 새 책상에 애정을 줄 만큼 한가한 시기가 아닙니다. 아마도 이전 책상보다 조금 더 넓어져서 좋다 정도이지 싶습니다.


11시쯤 아내가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단골 횟집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옷도 갈아입기 전에 둘째 방부터 확인합니다. 얼마나 어떻게 정리했는지 궁금했나 봅니다. 방문을 닫고 나오는 아내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못마땅한지 한숨 쉽니다. 한숨 쉬는 아내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놔둬, 이제부터 자기 방이야. 정리도 청소도 알아서 하라고 해."


지난 몇 주 동안 두 딸의 방을 정리하는 아내를 지켜봤습니다. 버리고 치우고 정리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닙니다. 수업에 과제에 바빴을 겁니다. 그래도 저에게 의견을 물어올 때면 상기된 듯 보였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챙기는 걸 즐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가구도 자신이 쓸 걸 고르는 것처럼 신나 보였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갖는 아빠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정 같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아내가 자랄 때 갖지 못했던 걸 딸에게는 해주고 싶은 그런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아내 마음에 들게 꾸몄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해 못 할 엄마와 딸 사이의 감정이 있을 겁니다. 아빠와 엄마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것입니다. 부모 역할 이전에 여자 대 여자로서 공감하고 교감할 것입니다. 그런 정서적 교감이 자칫 선을 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부딪치기도 합니다. 부모 자식 간의 선을 지키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안 됩니다. 어쩌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다투는 거라 생각합니다. 애정이 없다면 싸울 일도 없을 테니까요. 아내가 선을 지켰으면 좋겠지만 마음대로 안 될 겁니다. 자식은 클수록 손에서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럴수록 다툼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식은 언제고 자식이니까요.


글을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독자는 빠져들게 됩니다. 빠져들어 읽을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요. 행간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까지 이해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을수록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격, 성향, 가치관, 습관, 말투 등 하나씩 적었을 때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글로 쓴다고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엄마와 딸 사이입니다. 아빠이기에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구체적으로 적어보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수박 겉핥기라도 이렇게 적어봅니다. 글로 쓰다 보면 적어도 조금씩은 이해하게 될 겁니다. 모녀 사이를 이해해야 저의 태도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둘 사이 줄타기는 저에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습니다. 당연히 아내에게 쏠려야 하는 게 맞지만, 그래도 딸이 아빠에게 바라는 것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아빠와 남편이 될 수 있다면 생명 연장(?)의 꿈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요?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매거진의 이전글 꿈으로 가득 찬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