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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2. 2023

밥상머리 글쓰기


치킨을 앞에 두고 모여 앉았습니다. 두 마리는 남고 한 마리는 모자랍니다. 한 마리에 추가 메뉴로 반 마리를 더했습니다. 입이 바쁩니다. 씹고 말하고, 말하면서 씹고, 각자 배를 채워갑니다. 하루 중 대화가 가장 많은 때가 밥상에 둘러앉을 때입니다. 지금처럼 화기애애 분위기가 연출된 건 얼마 안 됐습니다.


큰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5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습니다. 입으로 씹는 것 말고 못 하게 했습니다. 두 딸은 물론 아내도 제 눈치만 봤습니다. 입을 꾹 다문 채 밥만 먹는 저에게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꼬투리를 잡기 위해 가자미눈을 뜨고 감시하는 모양새였습니다. 걸리기만 하면 속에 있던 화를 쏟아낼 각오였습니다. 한두 번 당하니 아이들도 눈치만 봅니다. 이유도 모른 체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못났습니다. 대상을 잘못 골랐습니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밖에서 해결했어야 했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직장에서 풀었어야 했습니다. 그걸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애꿎은 아이에게 풀어낼 심산이었습니다. 찌질하게 말이죠.


5년 전부터 책을 읽으며 천천히 변해 왔습니다. 한 해 두 해 읽는 책이 쌓이면서 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씩 실천해 옮겼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제 입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아졌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었고 다시 시도하면서 저의 진심을 조금씩 전하고 있습니다.


하루 한 번 저녁 한 끼를 먹기 위해 모입니다. 밥 먹는 20여 분 남짓 다양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주로 두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줍니다. 저는 듣기만 합니다. 간간이 추임새만 넣어주고 호응해 주는 게 전부입니다. 가끔은 과제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도움이 되는 아빠에게 믿음이 생기는가 봅니다. 문제가 생기면 곧잘 물어오곤 합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니 제 생각을 말해주는 게 전부입니다. 제 말에 힌트를 찾기도 하고 따라서 해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니 자연히 신뢰가 쌓인 것 같습니다. 대화를 시작으로 말이죠.


중2, 사춘기 딸과 관심사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대화하자고 억지로 앉혀다 놓을 수도 없을 테고요. 그래서 마주 앉는 그때라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밥상머리에서, 학원을 오가는 차 안에서, 과제를 하기 위해 마주 앉은 책상에서요.


서로의 관심사를 인정해 주는 게 시작인 것 같습니다. 집에 오면 밥 먹고 자기 방에 들어가 몇 시간씩 스마트폰만 봅니다. 예전에는 통제하려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인정해 줍니다. 쉽지 않지만 믿으려고 합니다. 저도 남는 시간 TV도 보고 스마트폰도 들여다봅니다. 딸의 행동도 그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정해 주지만 한 편으로 걱정이 듭니다. 시간을 조금만 더 아꼈으면 합니다. 잔소리가 입안에 맴돌지만 선뜻 뱉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제 욕심입니다. 이왕 믿기로 한거 더 두고 보자고 한발 물러섭니다. 어느 때가 되면 분명 시간의 중요성을 스스로 알게 될 거라 믿습니다.


아직은 혼돈의 시기일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정체성을 찾아갈 것입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두고 보는 게 저의 역할입니다. 스스로 찾으면 알아서 변할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믿어주고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겁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죠.


생각해 보면 5년째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꾸준한 관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딸들과의 관계가 나아지기 시작한 것도 입을 닫고 관심을 보이면 서부 터였습니다. 서툰 글솜씨를 나아지게 하려면 하나씩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말이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많이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공부도 뒤따라야 했습니다. 공부의 시작은 관심입니다. 내 글에 부족한 게 무엇인지, 더 좋은 문장에는 어떤 원칙이 있는지, 잘 읽히는 구성은 무엇인지 등. 관심을 가지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는 걸 따라 하나씩 익히고 연습하길 반복했습니다.


익히고 연습하길 5년입니다. 5년 동안 쓰레기를 쓸 각오로 이어왔습니다. 쓰레기도 잘 모으면 자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를 잘 활용하니 처음보다는 나아진 것 같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 연습이 필요하지만요. 이제 겨우 5년 쓰고 글을 평가하는 건 섣부릅니다. 누가 들으면 기도 안 찰 겁니다.


밥상머리에서 입을 닫고 귀를 여니 관계가 나아지고 있습니다. 글도 관심을 갖고 공부할수록 나아지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관심을 가지면 더 빨리 실력도 좋아질 겁니다. 직장을 다니니 그러지도 못합니다. 대신 글 한 편 쓰는 그 시간만이라도 초집중 합니다. 아는 것들 모조리 끄집어내 글 한편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죠.


꾸준한 관심과 공부로 딸과의 관계도, 글쓰기 실력도 더 나아지기 바라봅니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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