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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5. 2023

배워서 남주는 글쓰기


큰딸은 라디오 진행 방식을 빌려 음악을 소개하는 과제를 진행 중입니다. 모둠이 정해진 날부터 망했다며 한숨 쉬었습니다. 넷 중 두 명은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대본을 담당한 친구는 정해진 기한까지 딱 두 줄 써왔다고 합니다. 참다못한 큰딸이 대본을 쓰겠다고 나섰습니다.


학원을 다녀온 큰딸이 써놓은 대본을 한 번 봐달라고 합니다. 시작 멘트, 곡 소개와 퀴즈까지 구성이 제법 그럴듯합니다. 주어진 8분을 넘기지 않으려면 단어 하나까지 신경 써야 한답니다. 생소한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자료 조사까지 한 모양입니다. 비발디 협주곡 중 <사계>와 <조화의 영감>을 다뤘습니다.


대본을 훑어본 뒤 아는 척을 좀 했습니다. 2년 넘게 모차르트 협주곡 앨범을 들으며 이것저것 주워 들었습니다. 내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협주곡의 정의와 곡의 구성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입니다. 머릿속에 넣은 지도 오래돼 막상 알려주려니 버벅거리기는 했습니다.


큰딸은 제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런 태도 덕분에 저도 말할 맛이 납니다. 조금씩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진지한 표정을 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협주곡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가 뿌듯했습니다.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저였는데 나름 다양한 상식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단연코 책 덕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읽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습니다. 늦은 시작 탓에 치열하게 읽었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 지도 이해했습니다. 워낙 든 게 없었던 탓에 더 욕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깊이보다 얕고 넓게 알아가는 게 제게도 맞았고요.


5년 동안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에 대해 할 말이 조금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얕은 지식을 켜켜이 쌓으며 꾸준히 썼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저의 경험은 꽤 괜찮은 조미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막막하던 생각에 조금씩 물꼬를 터주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어제 콘생스쿨 1주 차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마다 정한 주제의 소책자를 쓰는 과정입니다. 개개인의 콘텐츠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적은 분량으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글쓰기를 처음 해보는 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열흘 동안 손도 못 댄 분, 제법 분량을 채운 분, 주제에 맞는 목차를 구상 중인 분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건 글을 쓰는 게 부담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에 보이는 글이니 더 부담될 겁니다. 더군다나 내가 가진 콘텐츠를 홍보하는 성격의 소책자이니 더더욱 그럴 겁니다.


저도 물론 처음 글을 쓸 때 똑같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SNS에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살아오면서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두렵다고 안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앞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일의 96퍼센트 이상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단 4퍼센트 경우만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니 부담을 덜어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맞는 말입니다. 걱정하는 일 중 대부분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우 거의 드뭅니다. 그러니 일단 쓰고 싶은 글을 써기로 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렇게나 쓰고 고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 글이나 마음껏 쓰라고 했습니다. 다듬고 고치고 더하는 과정을 통해 분명 더 나은 글이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일단은 아무렇게라도 쓴 글이 있어야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요.


한 분씩 피드백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더 공부해야겠다. 내가 공부하는 만큼 그들도 아는 게 많아지겠구나. 물론 평생 공부할 각오로 이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은 '혼자 공부'였다면, 앞으로는 누군가를 돕는 '같이 공부'인 것입니다. 나만 아는 게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일 것입니다.


남은 3주 동안 분명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목표를 정해 매일 조금씩 쓰다 보면 분명 완성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이미 시작했으니 절반의 성공입니다. 계속 쓰다 보면 마지막도 올 테고요. 처음 한 번의 성취감이 또 다른 동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삶 속에 글쓰기가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저가 바라는 삶입니다. 단순히 소책자 한 권 써내기보다 글 쓰는 재미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글쓰기가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합니다. 글쓰기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것도 느꼈으면 합니다. 글을 쓰면서 각자의 삶도 다시 쓰기를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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