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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06. 2023

글 잘 쓰는 비법, 이것만 알면 끝


수업에 늦었는지 아내는 급하게 집을 나섰다. 저녁 반찬을 준비해놓지 못했다며 돼지고기 목살 사진을 보냈다. 직감했다. 묵은지 목살 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아내가 해주는 것만 맛있게 먹었다. 내 손으로 김치찜을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당황하지 않는다. 24살부터 독립해서 밥 해 먹었다. 요리는 꽤 하는 편이다.


언제나 시작은 두렵다. 특히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은. 처음 시도하는 음식이라 레시피가 필요했다. 인터넷 검색이면 다양한 방법의 김치찜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선택만 하면 된다. 주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누구나 인정하는 요리계의 미다스, 백종원 표 김치찜 레시피로 찜했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즉석 설렁탕 국물을 냄비에 부었다. 작년 김장 때 장모님이 보내주신 잘 익은 김치 두 포기를 그 안에 담았다. 사이사이 목살이 잘 익을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불을 붙였다. 이제부터 시간과의 싸움이다. 김치, 고기, 설렁탕 국물이 혼연일체가 되는 타이밍을 잡아내야 한다.


끊는 동안 몇 가지 채소를 썰어놓는다. 양파, 당근, 파로 감칠맛을 돋아도 아이들은 고기와 김치만 먹는다. 채소는 내 몫이다. 어쩌면 채소를 넣는 주목적은 심심해 보이는 김치찜에 데코레이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채소까지 우려난 듯한 향이 전해지면 비로소 불을 끄고 지중해를 떠다니는 보트가 연상되는 곡선이 살아 있는 접시에 담아낸다.


처음 시도해 보는 요리에 평가받을 시간이다. 두 딸의 입맛은 냉정하다. 특히 큰딸은 미식가 못지않은 날카로운 입맛을 가졌다.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핀셋으로 집어내는 능력자다. 작은딸도 입맛에 맞는 것만 잘 먹는 편이라 예의 주시해야 한다. 밥과 함께 맛을 본 두 딸의 반응은 두 손 엄지 척이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찾지 못할 레시피가 없다. 같은 요리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수십수백 가지 방법이 있다. 저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렸다며 믿고 따라 하라고 한다. 그들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레시피라며 자랑한다.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챗 GPT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마치 이놈만 이용할 줄 알면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고 여긴다. 그 믿음이 틀린 건 아니다. 시연하는 장면을 보고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만 봐도 혀를 내두른다. 글 좀 쓴다는 이들조차 그의 결과물은 사람이 썼다고 믿을 만큼의 수준이라고 하니 말이다.


마치 원하는 요리에 가장 알맞은 레시피를 찾은 것처럼 챗 GPT에 열광하는 분위기이다. 챗 GPT가 나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글쓰기 비법에 열광 수준의 관심을 보였다. 글쓰기 관련 책이 쏟아지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챗 GPT가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제 이놈만 잘 다루면 글쓰기가 더 쉬워졌다고 믿는 분위기다.


이미 아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챗 GPT와 글쓰기 비법이 담긴 책들의 허상을. 챗 GPT는 일종의 도구일 뿐이다. 그가 만들어낸 글이 결과물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 그놈을 통해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결국 그 피해는 글쓴이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비법서라며 세상에 나오는 책도 마찬가지다. 그런 책을 읽어보면 비법이 비법이 아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원론적인 내용을 다룰 뿐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글쓰기만큼은 비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지금까지 글쓰기 관련 책을 100권 이상 읽고 결론과도 닿아 있다. 내가 아는 유일한 비법은 이것이다.


그냥 쓰는 것이다. 요리에 필요한 각각의 재료가 어떤 맛을 내는지 알아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필요한 기본기는 있다. 기본기를 잘 다지는 게 재료 본연의 맛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 할 건 정해져 있다. 많이 쓰는 것이다. 요리를 많이 한 조리사의 실력이 늘듯이 말이다.


글쓰기 비법은 없다고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쓴 이은대 작가도 목에 핏대 세우며 말했다. 나도 눈에 핏줄을 세우며 그 말에 공감했다. 나는 이제 겨우 5년째이지만 비법이 없다는 건 몸으로 체득했다. 글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은 닥치고 많이 쓰는 것뿐이다. 그리고 더해서 책을 읽는 것이다.


요리사는 기존 레시피에 새로운 재료를 더해 또 다른 맛을 내려고 시도한다. 재료를 통해 늘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이다. 요리사가 시장을 찾듯 작가도 책을 통해 새로운 재료를 발견한다. 늘 세상일에 깨어 있을 때 소통하는 글도 쓸 수 있다.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로서 책만 한 게 없다고 믿는다. 책만 읽어도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결론은 이거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일단 많이 쓰면서 많이 읽는 것이다. 눈을 현혹하고 정신을 빼놓는 비법서 같은 것들에 정신 팔릴 시간에 한 편이라도 더 쓰는 게 실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길이다. 요리를 오래 할수록 도구에 익숙해지듯 글도 많이 쓸수록 쓰는 백지를 대하기 조금은 수월해진다.


수월의 의미가 눈을 가리고 칼질하는 능숙한 솜씨를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자주 마주하니 익숙해지는 정도라고 할까. 익숙해지면 낯설 때보다는 친밀감을 갖게 된다. 거부감이 줄어든다. 그래서 그나마 첫 줄이 수월해지는 정도라고 하겠다. 이 또한 많이 쓰면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오늘 저녁은 아내가 해주는 밥과 반찬을 먹을 것 같다. 매일 걱정해도 답이 없는 반찬 고민에 하루를 보낼 아내가 해주는 밥과 반찬에 토 달지 않고 먹는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 편이기도 하고 앞으로 쭉 얻어먹으려면 '할많하않'하는 게 일종의 처세이다. 숟가락 뜰 힘 있을 때까지 얻어먹으려면 말이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4068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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