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 도로 정체는 우주의 기운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앞차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오디오북도 듣고 유명 강사의 강연, 자기 계발 콘텐츠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출근길보다 집중은 안 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얻는 게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꾸준함이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만 필요한 게 아닐 수 있다. 사람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의 친밀도 다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이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일 테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나부터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고 말이다.
"퇴근하고 한잔할까?"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금주한 지 17개월째고 아마 그 이전에도 못 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 2년이 저녁 술자리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거리 두기가 풀려도 술 끊은 걸 아는지 먼저 연락 오는 일은 없었다. 나도 점점 익숙해졌다. 술을 끊은 이유에 충실한 삶을 반복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술자리를 가졌던 친구 현석이. 단둘이 마신 게 2년 도 더 된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 한 잔 생각나면 제일 먼저 연락했던 것 같다. 술을 끊고부터 이런 연락조차 안 하게 됐다. 술 약속이 아니더라도 안부를 묻는 전화 정도는 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술이라는 목적이 사라지니 안부 전화조차 부담이 된 것 같다.
현석이뿐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이어온 관계이고, 딱히 먼저 안부를 물을 만큼 다정한 성향도 아닌 탓도 있다. 필요하면 먼저 연락이 올 것이고 그때 반갑게 받으면 된다는 주의이다. 상대방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번쯤 먼저 전화를 해볼까 싶어 연락처를 찾아보지만 통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년 동안 아홉 곳의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서 인연이 돼 가끔이지만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다. 가정사를 챙길 만큼 가까운 사이도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연락하며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사이도 있다. 필요에 의한 관계 이전에 사람이 좋아서 유지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누구에게나 먼저 연락을 하면 다들 반갑게 맞아준다. 어쩌면 그들도 먼저 연락하는 게 어려울 수 있고, 그걸 상대방이 해주면 오히려 더 고마워하는 것 같다. 그러니 먼저 전화할 용기를 가지면 분명 내가 바라는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 중 하나이지 싶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수시로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별일이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연락해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이지만 손가락이 움직이기까지 생각이 많이 끼어든다. 내가 그렇다. 막상 전화번호를 찾아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고 화면을 닫는 경우가 더 많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잘 지내냐는 인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선뜻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에게 반가운 사람인가 싶어서다. 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연락하지만, 상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내 전화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 불편하지만 끊어내지 못하는 그런 사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관계이다. 행동하기까지 생각은 적을수록 좋은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목적이라면 말이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연락하지 못할 이유만 잔뜩이다. 차라리 생각 없이 먼저 통화 버튼을 누르면 적어도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는 남길 수 있다. 설령 그 사람이 나를 반가워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상대방도 적어도 그 순간에는 자신을 생각했다는 걸 감사해하지 않을까?
먼저 주는 사람이 남기는 게 많다고 했다. 주는 게 꼭 물질만은 아닐 테다. 통화가 무료인 요금제가 대부분이다. 부담 없이 몇 초, 몇 분 통화로 상대방의 인심을 살 수 있다. 목적 없는 통화를 자주 하면 이유가 생겼을 때도 망설임 없이 전화할 수 있게 될 테다. 받기만 하는 사람도 보답할 기회를 갖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대화가 서툰 사람에게는 글이 필요할 수 있다. 글이 서툰 사람은 말이 편할 수 있다. 글로 표현하든 말로 전하든 중요한 건 상대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것보다 자주 꾸준히 보면 당연히 정이 들기 마련이고. 글이 편한 사람은 글로 마음을 자주 전하고, 말이 편한 사람은 통화로 자주 안부를 물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나를 싫어했던 사람도 나를 좋아할 수 있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더 좋아하게 될 테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꾸준히 연락하는 게 분명 더 나은 사이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지금보다 조금 더 뻔뻔해졌으면 좋겠다. 뻔뻔해질수록 인간관계는 넓어질 것 같다.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게 순서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