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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15. 2023

통화 버튼 누르기까지 1만 킬로미터


금요일 퇴근길 도로 정체는 우주의 기운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앞차만 멍하니 바라보는 것보다 오디오북도 듣고 유명 강사의 강연, 자기 계발 콘텐츠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출근길보다 집중은 안 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얻는 게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꾸준함이 꼭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만 필요한 게 아닐 수 있다. 사람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꾸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와 그렇지 않은 사이의 친밀도 다르다. 언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사이는 평소에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일 테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나부터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고 말이다.


"퇴근하고 한잔할까?"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금주한 지 17개월째고 아마 그 이전에도 못 들었던 것 같다. 코로나 2년이 저녁 술자리를 멀리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거리 두기가 풀려도 술 끊은 걸 아는지 먼저 연락 오는 일은 없었다. 나도 점점 익숙해졌다. 술을 끊은 이유에 충실한 삶을 반복해 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술자리를 가졌던 친구 현석이. 단둘이 마신 게 2년 도 더 된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 한 잔 생각나면 제일 먼저 연락했던 것 같다. 술을 끊고부터 이런 연락조차 안 하게 됐다. 술 약속이 아니더라도 안부를 묻는 전화 정도는 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술이라는 목적이 사라지니 안부 전화조차 부담이 된 것 같다.


현석이뿐 아니라 다른 친구에게도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이어온 관계이고, 딱히 먼저 안부를 물을 만큼 다정한 성향도 아닌 탓도 있다. 필요하면 먼저 연락이 올 것이고 그때 반갑게 받으면 된다는 주의이다. 상대방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 번쯤 먼저 전화를 해볼까 싶어 연락처를 찾아보지만 통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년 동안 아홉 곳의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서 인연이 돼 가끔이지만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도 있다. 가정사를 챙길 만큼 가까운 사이도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연락하며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사이도 있다. 필요에 의한 관계 이전에 사람이 좋아서 유지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누구에게나 먼저 연락을 하면 다들 반갑게 맞아준다. 어쩌면 그들도 먼저 연락하는 게 어려울 수 있고, 그걸 상대방이 해주면 오히려 더 고마워하는 것 같다. 그러니 먼저 전화할 용기를 가지면 분명 내가 바라는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것 중 하나이지 싶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수시로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별일이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연락해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이지만 손가락이 움직이기까지 생각이 많이 끼어든다. 내가 그렇다. 막상 전화번호를 찾아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고 화면을 닫는 경우가 더 많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잘 지내냐는 인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선뜻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그에게 반가운 사람인가 싶어서다. 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연락하지만, 상대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내 전화를 불편해할 수도 있다. 불편하지만 끊어내지 못하는 그런 사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관계이다. 행동하기까지 생각은 적을수록 좋은 것 같다. 특히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목적이라면 말이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연락하지 못할 이유만 잔뜩이다. 차라리 생각 없이 먼저 통화 버튼을 누르면 적어도 상대방에게 좋은 이미지는 남길 수 있다. 설령 그 사람이 나를 반가워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상대방도 적어도 그 순간에는 자신을 생각했다는 걸 감사해하지 않을까?


먼저 주는 사람이 남기는 게 많다고 했다. 주는 게 꼭 물질만은 아닐 테다. 통화가 무료인 요금제가 대부분이다. 부담 없이 몇 초, 몇 분 통화로 상대방의 인심을 살 수 있다. 목적 없는 통화를 자주 하면 이유가 생겼을 때도 망설임 없이 전화할 수 있게 될 테다. 받기만 하는 사람도 보답할 기회를 갖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대화가 서툰 사람에게는 글이 필요할 수 있다. 글이 서툰 사람은 말이 편할 수 있다. 글로 표현하든 말로 전하든 중요한 건 상대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것보다 자주 꾸준히 보면 당연히 정이 들기 마련이고. 글이 편한 사람은 글로 마음을 자주 전하고, 말이 편한 사람은 통화로 자주 안부를 물으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나를 싫어했던 사람도 나를 좋아할 수 있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더 좋아하게 될 테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꾸준히 연락하는 게 분명 더 나은 사이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지금보다 조금 더 뻔뻔해졌으면 좋겠다. 뻔뻔해질수록 인간관계는 넓어질 것 같다. 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찾아가는 게 순서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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