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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20. 2023

오늘 같은 아침이 6년째


평택 현장으로 출근한다. 도로는 가로등 불빛이 밝히고 있다. 차 안은 오디오북 남자의 딱딱한 목소리로 채워졌다. 이케이도 준의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멈췄던 곳부터 다시 틀었다. 강변북로를 따라 한남대교를 건너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다행히 강변북로 정체는 없었다. 1시간 만에 오산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왔다. 현장 작업자는 9시쯤 도착 예정, 7시에 문을 여는 스타벅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잠시 오디오북을 들으며 눈을 붙였다. 건물 사이를 비집고 떠오르는 해가 동승석 창문을 통해 얼굴로 비친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피할 곳이 없자 포기하고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집중하는 사이 잠깐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몇 분 분량의 이야기를 놓쳤다. 퍼뜩 잠이 깼고 시계가 6시 57분을 가리켰다. 오디오북을 끄고 가방을 챙겨 매장으로 들어갔다.


바나나가 보이지 않아 아메리카노만 시켰다.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점원의 말에 고개를 까딱해 보인 뒤 잔을 받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올 때마다 앉았던 자리가 비어있다. 커피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마우스와 헤드폰도 꺼냈다. 스마트폰 핫스폿을 켜 노트북에 연결했다. 무료 와이파이가 있지만 자주 끊기는 탓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헤드폰을 쓰고 글 쓸 때 듣는 <모차르트 모멘텀 1785>를 틀었다. 네이버에 로그인한 뒤 블로그에 들어갔다.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저장된 템플릿을 연 뒤 빈 화면에 첫 줄을 쓰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일요일 독서모임에서 다룰 다니엘 핑크의 《후회의 재발견》서평을 쓴다. 입에서 나오는 찬 바람이 닿아도 커피는 식지 않았다. 입모양을 'ㅇ' 자로 만드니 입에 들어갈 때 '츄르릅' 소리가 난다. 몇 모금 마시고 자판을 두드리고 다시 몇 모금 마신 뒤 키보드를 두드렸다. 앞에 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마우스 휠을 굴린다. 그 사이 커피도 식었다. 커피는 잔을 기울였을 때 가루가 보일 때까지만 마신다. 커피가 줄어드는 만큼 화면에는 글씨로 채워졌다. 맞춤법을 확인하고 사진을 넣고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발행 버튼을 눌러 해시태그를 입력했다. 오늘 쓴 이 한 편도 많은 사람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발행 버튼을 눌렀다.


집을 나선 게 5시 반이었다. 블로그에 글을 발행한 게 8시 50분쯤이었다. 그 사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오디오 북을 들었다. 약속된 시간까지 문을 연 카페를 찾아 글을 쓴다. 사무실로 출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업무를 시작하는 8시 50분까지 오롯이 읽고 쓰는 데 집중한다. 주말에도 장소만 다를 뿐 같은 6시부터 11시까지 읽고 쓰면서 보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6년째다. 6년 동안 쓴 글이 몇 편인지 셀 수 없다. 매일 글 한 편 쓴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았다. 매일 책 읽는다고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도 않았다. 알아봐 주지도 않아도 매일 반복했다. 알아봐 주길 바라고 매일 반복한 게 아니다. 내가 정한 신념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6년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배신해서도 안 된다. 지난 6년은 앞으로 나를 위해 뿌리는 내리는 시간이었다. 뿌리가 깊고 넓을수록 나무는 곧게 자란다. 어떤 바람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나무에 열리는 잎도 풍성하고 열매도 달다. 단단한 뿌리에서 자라는 줄기는 성장 속도도 빠를 것이다. 그만큼 땅속 영양분을 빠르게 많이 흡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뿌리가 얕고 좁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덜 자라고 쉽게 흔들리고 잎도 열매도 보잘것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조바심 내고 욕심부린다고 말한다. 뿌리가 자리 잡기까지는 느긋하게 참고 버티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닐 테다. 나도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조바심과 욕심에 휘둘렸으니 말이다. 지나고 보니 그때를 참아냈기에 6년의 노력이 쌓일 수 있었다. 20년 30년 경험자에게 6년은 콧등 땀방울 정도로 여길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 땀방울이라도 맺기 위해 6년을 버텼으면 앞으로도 충분히 잘 해내지 않겠는가?


고작 6년 쓰고 글쓰기와 책 쓰기를 가르치겠다고? 욕해도 좋다. 얼마든 들어줄 자신 있다. 잘나서 글쓰기 책 쓰기를 가르치겠다는 게 아니다. 더 배우기 위해, 함께 성장하기 위한 장을 마련한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그들보다 그래도 조금은 더 아니까. 아는 걸 나누고, 더 나누기 위해 더 공부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한다. 남을 가리킬 수 있는 완벽한 순간은 절대 오지 않는다. 완벽이 아닌 완성을 향해 노력할 뿐이다. 매일 습관처럼 반복하는 노력이면 적어도 내 손이 닿은 곳에 있는 몇몇은 글 쓰는 삶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내 손에 닿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그 누군가에 닿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퍼져나가면 어느 때인가는 지금보다 글 쓰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겠는가. 그런 신념으로 오늘도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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