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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21. 2023

웃는 얼굴에 '벌점' 주지 못한다

웃을 일이 없어서 웃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입니다. 웃어서 웃을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행복도 이와 같은 비유를 합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진다고 말이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습니다. 소소한 일에서 웃음을 찾게 되면 그게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뜬금없는 명품 선물이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두 딸을 키우면 웃을 많았을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이 무표정한 가면을 쓰고 있으니 얼굴에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안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마음이 무표정했습니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해도 하루가 모자랐습니다. 기껏해야 남일 뒤치다꺼리입니다. 어쩌면 스스로 그런 존재로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을 만들어서 하기보다 시키는 것만 하니 윗사람도 그에 맞는 일만 지시했던 것 같습니다. 악순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직장에서 존재감을 의심받으니 집에서라고 마음이 편했을까요?


장모님이 계신 집에 들어가도 얼굴은 늘 무표정했습니다. 장모님도 원래 그런 사람인가 싶어 놔두는 편이었습니다. 아내도 말이 없는 저에게 불만은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이런 내 상태를 말해주지 않았으니 알리 없고요. 퇴근 후 집은 저만 딴 세상에 사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웃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평소에 미소만 짓고 살아도 삶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읽었던 책에서 여러 사례를 접했습니다. 《육일 약국 갑시다》의 김성오 부회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마산 변두리 약국을 동네 사랑방으로 만든 건 그분의 웃음이었습니다. 늘 밝은 미소로 손님을 대한 그분의 태도가 동네 약국을 넘어 거대 기업을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웃는데 돈이 드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지면 되는 것 같습니다. 저가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까지 책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음의 병이 있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처럼 똑같은 상처를 안 가지려면 스스로 변화해야 했습니다. 원치 않는 시련을 겪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딸에게 살갑게 대하지는 못합니다. 아내에게도 애교는 못 부립니다. 대신 늘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화낼 일을 만들기보다 한 번 더 웃어 보입니다. 불평불만을 말하기보다 좋은 점을 먼저 봅니다. 못하는 걸 드러내기보다 잘하는 걸 찾습니다. 어쩌다가 아닌 평소 노력하는 중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할 가치는 충분합니다. 저의 노력이 가족을 웃게 한다면 말이죠.


새벽에 출근하는 이유는 막힘없이 도로를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밤 낮 없이 과속 카메라가 도사리고 있지만 익숙한 탓에 찍히는 경우는 없습니다. 방심했나 봅니다. 앞차가 길을 터준 때를 놓치지 않고 냅다 밟았습니다. 교차로 신호등이 붉은색입니다. 속도를 줄였지만 정지선에 멈추기엔 늦었습니다. 그대로 속도를 줄여 교차로를 통과했습니다. 익숙한 붉은 봉을 흔드는 제복이 보입니다. 올 것이 왔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다 했습니다. 도로 가장자리 차선에 차를 대고 신분증을 보여줬습니다. 공무 수행 중인 경찰관을 아무 말 없이 지긋이 바라봤습니다. 과태료 처분 딱지를 다 작성했는지 사인하라고 화면을 보여줍니다. 기꺼이 미소를 띠며 사인했습니다. 웃는 표정에 허를 찔렸나 봅니다. 이 새벽에 딱지 끊는데 웃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합니다. 그 표정에 어찌 벌점을 주겠냐며 4만 원 과태료를 발부해 줍니다.


딱지를 받기까지 5분이 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별생각 없이 웃어 보인 덕분에 더 큰 화는 면했습니다. 웃는 얼굴을 좋게 봐준 경찰관에게 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 감사한 건 이렇게 글 한 편 쓸 수 있는 글감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글로 쓰면서 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웃으면 좋다는 게 이래서 하는 말인가 봅니다. 웃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 일이 연이어 생기니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오늘만큼은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https://m.blog.naver.com/motifree33/22307671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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