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큰딸이 오늘 중간고사를 봅니다. 처음 보는 시험이 부담이 큰 것 같습니다. 영어 수학 학원도 첫 시험이라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봅니다. 한 달 사이 일요일도 없이 수업을 했습니다. 큰딸도 군말 안 하고 따랐습니다. 4월 들어 주말에 친구도 안 만나고 집 학교 학원 스터디 카페만 다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만큼 오늘내일 시험에서 바라는 결과가 나오길 기도합니다.
첫 시험에 부담도 있었을 텐데 큰딸이 먼저 공약을 걸었습니다. 평균 95점 받으면 세븐틴 신규 앨범을 사달라고 합니다.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저도 못 받았던 점수를 큰딸이 받아 준다면 뭘 못해줄까요. 큰딸도 자신이 있으니 먼저 말을 꺼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험 준비를 해보니 95점이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볼 때마다 평균 점수를 낮추려는 시도를 해 옵니다.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우선 정한 목표대로 밀어붙여 보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자신 없는 표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더 공부 시간에 늘리고 집중하는 게 보였습니다.
어제도 수학 학원이 끝나고 10시까지 있겠다며 스터디 카페에 갔습니다. 밤길이 무서울까 마중이라는 걸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미리 말 안 하고 가면 엇갈릴까 싶어 가는 중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몇 걸음만에 전화가 옵니다. 친구랑 같이 나왔다면서요. 눈치 없는 아빠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히 오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돌아서자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는 길 어디선가 친구와 헤어져 혼자 올까 싶어 아파트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저녁 먹은 지 얼마 안돼서 산책한다고 속으로 주문을 걸면서요. 20여 분을 서성인 것 같습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까 궁리도 했습니다. 딱히 무슨 말을 안 해줘도 되지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딸에게 전화가 옵니다. 집에 왔다고 하네요. 상상했던 그림과 다른 결말이었습니다.
여전히 불안했는지 기출문제를 더 풀겠다며 프린트를 또 했습니다. 12시가 다 되었는데도요. 그러라고 했습니다. 말린 들 듣지 않을 겁니다. 불안하니 더 매달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컨디션 조절도 중요하다고 한 마디 해줬습니다. 열심히 노력했어도 시험 날 컨디션 조절 못해 망치는 경우 허다합니다. 그것만큼 아까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 실수만 없다면 점수도 원하는 만큼은 받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내에게는 미리 말해줬습니다. 점수와 상관없이 선물을 사주겠다고요. 제 눈에는 과정에 충실히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결과가 잘 나오면 더 좋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큰딸도 이 기회에 과정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합니다. 제가 공약을 들어주는 이유도 같은 의미라고 설명할 겁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주는 거라고요. 결과보다는 과정이 먼저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첫 책을 출간하기까지 3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쓰다가 멈추고 다시 배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끝에 겨우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나온 건 결과입니다. 과정이 없었다면 갖지 못했을 겁니다. 포기했다면 더더욱 얻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비교로 스스로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쉽게 털고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도 했었습니다. 방황 끝에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음 다잡고 오늘 할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하나씩 결과물을 쌓아갔습니다.
과정에 충실하면 결과는 자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과정이 없이는 어떤 결과도 갖지 못할 테고요. 책을 쓰면서 실감했습니다. 한 줄을 써야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고, 한 페이지를 채워야 한 권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완성할 수 있다는 것도요. 그러니 과정이 전부하고 믿습니다. 만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온다는 제임스 딘의 말처럼 과정이 만족스럽다면 어떤 결과에도 당당하라고 큰딸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니 선물 받을 자격도 충분하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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