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아! 너희는 자매란다

by 김형준


보민이와 채윤이는 여자인 것 빼고는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엄마 배를 빌려 태어났을 뿐 완벽히 다른 생명체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뚜렷이 구분된다. 그나마 초등학교 4학년 치고 순진한 둘째 덕분에 둘 사이 애정 전선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사춘기를 겪는 큰딸은 유난히 동생에게 날을 세운다. 한 번도 따뜻하게 대하는 꼴을 못 봤다. 그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이해는 가지만 유별난 것 같다. 때로는 안타깝다. 자라는 내내 애틋한 자매사이가 이어졌으면 한다. 으르렁 대고 다툴 수는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보듬어주는 마음이 한결같았으면 한다. 나이 들어 결국 남는 건 형제뿐일 테니 말이다.


태어나서 줄곧 삼 형제로 자랐다. 사춘기를 겪기 전까지는 사이가 좋았다. 셋 만 있어도 무서울 것도 심심할 틈도 없었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기보다 한편이 되었다. 혼나도 같이 혼났고 반항해도 항상의 같은 편에 섰다. 셋 다 철이 없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다. 남다른 특기가 있지도 않았다. 남들에게 내세울 게 딱히 없는 형제였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저 사고 안 치고 건강하게만 자라는 자식들이었다.


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형제 사이는 양분되었다. 큰형 작은형 전선과 나, 내가 형들을 왕따 시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 편했다. 형 둘에게 전혀 꿀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웬만해서는 형들에게 지지 않았다. 아니 부딪칠 일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내가 먼저 무시했었다. 서로 갈 길이 달랐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는 길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겼다. 조언을 구하지도 술 한 잔 마시며 고민을 터놓지도 않았다.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아닌데 한 상에 둘러앉을 기회가 없었다. 마음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담벼락을 쳐놓고 지냈다.


나이가 들면 서로를 이해하는 때가 올 줄 알았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다시 애틋해질 때가 올 거라고. 어떤 사건이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지 않더라도 형제라는 끈이 다시 서로를 가깝게 이어 줄 거로 생각했다. 어쩌면 더 살았으면 그런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안타깝지만 서로 살 비비며 더 살아볼 기회가 사라졌다. 큰형의 부재는 모든 걸 바꿔놓았다. 원상 복구될 기대도 지난날의 반성도 관계 회복까지도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존재의 부재를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걸. 그러니 두 딸이 뚝딱거리는 게 당연해 보이는 한편 서로에 대한 애정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늘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이 더 컸으면 좋겠다. 의견이 안 맞아 부딪칠 수 있지만, 그 또한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이길 바란다.(욕심이 과한가?) 아무튼 한 번 맺어진 형제 연은 죽을 때까지 떼어지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하든 하늘이 두 쪽나든 보민이에겐 채윤이가, 채윤이에겐 보민이가 세상 전부가 되었으면 한다.(이 또한 지나친 욕심인가?)


엊그제 귀한 장면을 목격했다. 어쩐 일로 언니가 동생 어깨를 감싸고 걸었다. 평소 남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떨어져 걷는 게 당연했다. 둘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한 동안 나란히 걷는 게 아내도 나에게도 귀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뒷모습을 찍었다. 아마 둘은 사진 찍힌 걸 모를 테다. 둘이 으르렁대고 싸울 때 이 사진을 들이밀어볼 참이다. 아마도 발뺌부터 할 거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럴 때가 있었다는 걸 사진으로 본다면 조금 덜 날을 세우겠지.


자식을 내 뜻대로 키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나도 그렇게 컸으니 말이다. 형제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애정을 쌓아가는 것도 부모가 어찌해 줄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을 갖고 덜 상처 주며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부모 욕심에 협박과 회유로 관계 개선을 돕고 싶어도 이 또한 녹녹지 않다. 가만히 두고 보는 게 최선일 테다. 가끔 둘 사이 애정이 넘치는 장면을 기록하며 이럴 때가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 줄 밖에. 각자 철이 들고 서로를 먼저 챙길 때가 온다면(오겠지?) 기록들이 증거가 되어 보다 더 끈끈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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