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럴 수 있다니? 마음이 편안했다. 큰딸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몇 분 기다렸더니 알아서 준비했다. 그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조바심 나서 잔소리했었다. 잔소리는 안 하면 안 할수록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진즉에 알았으면 서로에게 상처 주고 마음 상해할 일도 줄었을 텐데. 어쩌면 부모의 이런 조바심 탓에 아이와의 관계가 멀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조바심을 덜 낼수록 아이와 부딪힐 일도 줄고 관계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휴가 첫날이었다. 큰딸은 강릉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긴 시간 차를 타는 게 싫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1시간 이내 몇 곳을 둘러보는 걸로 합의 봤다. 그중 한 곳이 광명 동굴이었다. 땀에 젖은 옷도 몇 분만 걸으면 뽀송하게 말려주는 게 요즘 날씨다. 광명 동굴은 겉옷이 필요할 만큼 서늘하다고 전해 들었다. 단단히 준비해서 나서기로 했다.
아내와 나, 둘째는 준비를 마쳤다. 큰딸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여러 번 물어봤다.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고. 안 가겠다고 안 했으니 당연히 알아서 준비하는 줄 알았다. 예전 같았으면 멍하니 앉아 있는 걸 보고 한 소리 했을 거다. "뭐 하고 있니? 왜 준비 안 하고 있어? 엄마 아빠는 준비 다 했는데, 너도 빨리 준비해야지." 한 소리 듣고 나면 큰딸도 마지못해 준비하는 시늉을 했을 터였다. 아무 말하지 않았다. 대신 괜찮냐고 물었다. 내키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몇 분 늦어지기는 했지만 서로가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광명 동굴 주차장 들어가는 데 20여 분 걸린 것 빼고는. 사람이 많아도 마음이 너그러웠다. 아마도 동굴 안의 기온이 서로의 마음을 여유롭게 해 준 것 같다. 좁은 길을 따라 줄줄이 늘어섰지만 누구도 짜증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닥다닥 붙어 걸어도 처음 보는 풍경을 마음껏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개중에는 손과 발이 바쁜 부모도 보였다. 아이를 앞세워 곳곳에서 인증숏을 남겼다. 뒤에 늘어선 줄은 아랑곳 않고 부모 마음에 드는 곳에 아이를 모델로 세워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 아이도 그 순간 사진 찍는 걸 원하는지 궁금했다.
두 딸이 어릴 때 우리 부부도 그랬던 것 같다.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어디를 가든 인증숏을 남기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두 딸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따라와서는 부모가 사진 찍어준다니 얼떨결에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또 부모 손에 이끌려 같은 동작을 반복했을 터였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만 듣고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좋아 보이는 곳이라면 사진을 찍어야 된다는 건 부모의 욕심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럴 때마다 부모 마음대로 모델이 되어주지 않는 아이에게 조바심에 잔소리가 많아진 게 아닐까.
뒤 사람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사진 찍는 모습이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들뜬 표정으로 모델을 자처하는 아이도 보였지만 표정이 떨떠름한 아이도 보였다. 마치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 듯 해탈한 표정이었다. 아니면 인상을 쓰고 싫은 티를 팍팍 내는 아이도 보였다. 그런 아이 앞에서 부모는 조바심이 난다. 뒤따르는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근사한 사진을 찍지 못할까 싶어서다. 마음이 쫓길수록 손은 빨라지도 말도 거칠어진다. 때로는 그곳을 즐기기보다 인증숏을 남기기 위해 찾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일부분만 보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본 아이의 표정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사진까지 남기면 잔소리할 일도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사진은 남기고 싶고 사람들은 몰려오고 아이는 내 뜻대로 안 되니 조바심에 잔소리가 많아질 수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단 그런 상황에서만 부모가 아이에게 잔소리와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닌 것 같다. 대개는 아이의 행동을 참고 기다려주지 못해서 잔소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지 못하는 건 부모 욕심 때문일 테다. 부모 기준에서 아이를 대하니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나친 비약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맞다. 그렇지 않은 부모도 많다. 나도 한때는 참지 못하고 잔소리하는 부모였다. 하지만 지금은 참고 기다리고 인정해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날 때 부모의 반응은 세 가지인 것 같다. 화가 나지 않는 부모, 화를 내지 않는 부모, 화를 내는 부모. 화가 나지 않는 부모와 화를 내지 않는 부모는 차이가 있다. 먼저 화가 나지 않는 부모는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감정 이입하지 않고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화를 내지 않는 부모는 화는 나지만 참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어쩌다 한 번 폭발하는 식이다. 참고 쌓아오다가 한 번씩 터지는 게 어쩌면 아이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는 부모는 대책이 없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아이의 몫이다. 부모의 화를 다 받아내며 자란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짐작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를 위한 부모의 태도는 '화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정한다. 부모도 감정이 있다. 내 자식을 위한다면 쓴소리도 할 수 있다. 훈계도 하고 때로는 매도 들어야 하는 게 진정한 부모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칙 없이 화만 내는 부모와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부모의 태도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가 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건 어려운 길이다. 어렵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완벽해질 수 없겠지만, 노력하는 태도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점점 나아질 거로 믿는다.
부모와 아이가 충돌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부딪치고 화해하고 끌어안아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충돌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한발 물러서주는 게 부모라면 어떨까? 그래도 아이보다는 모든 면에서 더 나은 게 부모이다. 열 번을 참으면 적어도 한 번은 아이도 부모의 뜻을 따라주지 않을까? 그 한 번이 쌓이고 쌓이면 분명 남부럽지 않은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