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은 중2병을 앓고 있다. 증상이 심하지는 않다. 아내와 내가 느끼기에 그렇다. 대화도 곧잘 한다. 우리 앞에서 스스럼없이 춤도 춘다.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날 있었던 일을 조잘거린다. 가끔 짜증도 낸다. 짜증 낼 때는 정해져 있다. 학원 숙제할 때다. 다 하고 나면 다시 돌아온다. 몇 해를 두고 봤지만 신기할 따름이다. 나처럼 AB형이라 그런 것 같다. 결론적으로 사춘기를 지나고 있지만 관계가 나쁘지 않다.
친구 딸은 중학교 1학년이다. 사춘기이다. 세븐틴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서 돈도 제법 투자하는 중이란다. 당연히 부모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돈 때문에 모녀 사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도 했단다. 덩달아 아빠도 딸에게 잔소리하는 횟수가 늘었다며 걱정했다. 아내의 편에 서자니 딸에게 미안하고, 딸의 편을 들자니 아내가 서운해할 것 같단다.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땐 호되게 야단도 친단다. 그런 시간이 쌓여 지금은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아마 사춘기 자녀를 둔 대부분의 가정이 내 친구 같은 고민이 있을 테다. 큰딸에게 같은 반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춘기이기 때문에 부모 자식 사이에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원하는 부모는 없다. 자녀도 무조건 엇나가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신체 발달 상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여러 책에서 말한다. 부모의 뜻대로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뇌 상태라고 했다. 그러니 매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하지만 부모도 자식도 더 좋은 관계를 원한다. 방법이 없을까? 짐작 건데 방법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다만 아는 걸 행동으로 옮기는 게 힘들 뿐이다. 행동으로 옮긴다면 우리 부모는 성인군자 이상의 인내와 사랑이 넘치는 온화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또한 불가능하다. 부모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춰줄 수도 이렇게 될 수도 없다. 아마도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라면 잔소리도 꾸중도 화도 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큰딸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사춘기 증상이 나타났다. 아내와 나도 첫 경험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할 때가 많았다. 같은 여자인 아내도 큰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남자인 나는 오죽했을까. 사춘기 시작은 아내가 감당했다. 아내는 딸의 눈치를 보는 게 최선이었다. 가급적 덜 부딪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둘 다 사람인지라 한 번씩 폭발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아니할 말이 없었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상황을 두고 볼 뿐이었다.
심각한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날이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관계가 나아진 건 아니었다. 떨어지지 않을 만큼 살짝 땜질을 해놓은 것 같았다. 아슬아슬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초기에는 상태가 더 심했다. 화를 내는 엄마가 무서웠던 건지, 아니면 화를 참고 있었는지 큰딸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대개는 엄마의 말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렇다고 태도가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변화가 스며들었고 그런 노력이 계속되면서 다툼도 잦아들었다.
중학교 2학년인 지금은 웃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내 경우에는 아내의 노력도 중요했지만, 아빠인 나의 역할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한 사춘기를 나는 옆에서 두고 봤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할 말한다고 귀에 들리지 않을 터였다.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괜한 오지랖에 감정만 상할 수 있다. 그래서 입을 닫았다. 무관심과는 달랐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보다 듣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열었다. 주로 밥 먹는 시간에 큰딸은 나에게 말할 기회를 줬다.
말할 기회가 생겼다고 그동안 쌓아두었던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했다. 2년 전에는 술을 마실 때였다. 가끔 아내와 술 한잔하다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는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술 먹고 말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쓸데없는 말이었다. 술을 끊고 나니 좋은 점 중 하나가 술자리 잔소리를 안 한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큰딸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언제고 필요한 선에서 묻고 답하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맑은 정신으로 말이다.
또 하나는 집에서 내 태도에 일관성을 유지했다. 주말이면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오전에는 내 할 일로 시간을 보냈다. 함께 하는 시간 외에는 늘 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가끔 TV도 보면서 시간 때우는 모습도 보였다.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인지 꾸준히 보여줬다. 아마도 그런 모습에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그런 덕분에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질문도 자주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근황도 알렸다. 친구와 어떻게 지내는지도 말한다. 학교생활이 어떤지도 자세히 들려준다. 단둘이 있는 시간도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정리해 보면 나는 입을 닫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아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어느 정도의 믿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방법이 정답은 아니다. 저마다의 상황이 있고 성향이 다르다. 나 또한 지금은 맞아도 시간이 지나면 틀린 방법일 수도 있다. 자녀도 나도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변화에 따라 태도도 달라진다. 아마도 그때마다 방법을 달리하며 맞춰가는 수밖에 없지 싶다.
자녀의 사춘기는 지나는 바람과 같다. 단지 지나가는 시간이 길뿐이다. 그 시간 동안 부모와 자녀가 어떤 관계를 만드냐에 따라 이후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누구나 더 나은 관계를 바란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고 서로의 생각과 고집대로만 살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은 바꿔 쓰지 못한다고 했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바뀌는 수밖에 없다. 내가 변하면 자연히 주변에도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관계 좋아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자녀와 부모 둘 중 노력이 필요하다면 부모가 노력하는 게 조금 더 효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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