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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27. 2023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해


11시 넘어 집에 돌아온 아내. 그때까지 잠을 안 자고 있었던 둘째. 아내는 둘째에게 너무 늦게 잔다고 한 소리 했다. 핑계를 대는 아이에게 아내는 뜬금없는 소식을 전했다.

"태권도 관장님이 그만두신다고 편지를 보내왔던데 알고 있니?"

둘째는 처음 듣는 말인 것 같았다. 오늘도 도장을 다녀온 아이에게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관장님이 보내온 편지를 심각한 표정으로 읽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씻으라는 말에도 이불속에서 꼼짝 안 했다. 잠시 두고 봤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봤다. 이불속에서 울먹이는 게 보였다. 정이 많은 둘째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헤어짐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장님과는 4년 넘게 이어진 인연이었고, 엄마 아빠 다음으로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러니 이 상황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눈물이 그렁한 아이에게 무슨 말로 달래야 할지 잘 몰랐다. 어른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틀에 박힌 위로는 씨알도 안 먹힐 테다. 그렇다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때도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둘째가 진정될 것 같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고, 잘 헤어지면 다시 만날 때 더 반갑지 않을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더 두고 봤다. 아내도 우는 아이를 달랬다. 잠시 뒤 그 기분으로 혼자 잘 수 없었는지 이불을 들고 안방으로 왔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혼자서 이불을 펴고 조용히 누웠다. 그러고는 잠이 들었다.


2017년 7월 어느 일요일 오후, 큰형의 죽음을 마주했다. 전날 평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온 형은 밤사이 지병으로 인해 다음 날 아침을 맞지 못했다. 형의 지인은 오전이 지나도록 연락이 안 되자 집을 찾았고 그제야 먼 길을 떠난 걸 알았다. 나와 큰형은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두세 달에 한 번 두 딸을 보여주는 날 시간이 맞으면 식사하는 게 전부였다. 따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밥을 먹지도 않았다. 스무 살부터 거리를 두었고 결국 가까워질 기회도 없이 떠나고 말았다. 가끔 이렇게 글로 남길 때면 인사도 없이 가버린 게 늘 아쉬웠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데면데면해도 더 오래 이승에서 함께 뒹구는 것도 의미 있었을 것이다. 서로에게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형제였으니 말이다.


큰형과 잘 헤어지지 못했다. 다시 만날 수 없기에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어쩌면 마지막을 함께 했어도 이별이 주는 아쉬움은 평생 자리 잡고 있을 것 같다. 둘째에게 말했던 잘 헤어지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잘 헤어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도 제 발로 도망쳐 나와 인사도 없이 헤어졌었다. 월급을 주지 않는 사장과 웃으며 헤어질 리 만무했다. 야밤에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떠나버린 대표에게는 여전히 배신감이 더 크다. 직장 생활에 이별은 이직이나 은퇴를 의미한다. 은퇴는 명예롭고 축하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직은 더 나은 곳을 원해서 떠나는 것이다. 남겨진 이들에게 축하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사람이 떠난 자리를 누군가는 원치 않는 일을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별이라는 의식을 치르기보다 흐지부지 연락이 소원해지며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굳이 오늘부터 우리 관계는 끝이라는 식의 통보 없이도 관심에서 멀어지면 자연히 헤어지는 식이다. 그러니 잘 헤어지기 위해 어떤 의식을 치러야 하는지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둘째에게도 그렇게 무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채윤이도 이제까지 경험을 통해 이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관장님과는 함께했던 시간의 농도가 짙다. 연필보다 볼펜으로 손등에 그린 낙서가 더 오래가는 법이다. 비누로 며칠을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내 낙서보다 더 재미있고 더 중요한 사람을 만나다 보면 손등의 낙서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라져 있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다.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물론 채윤이도 앞으로 더 많은 이별을 경험할 수 있다. 원치 않든 원하든 이별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별을 말하는 그 순간 힘들지만,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 또한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별이 쉬워지는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다. 아마도 저마다의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경험을 통해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비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을 비법이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적용될 테다. 헤어짐은 다시 만나길 전제한다. 그게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움의 크기에 따라 이별 기술도 능숙해져 간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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