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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07. 2023

'삶이 살아졌다' 말고 '삶을 산다'


피의자 신분이 된 적 있었다. 악의를 갖고 죄를 진 건 아니다. 못 받은 월급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밀린 월급을 받아내기 위해 회사 재산에 압류를 걸었고, 이를 괘씸히 여긴 대표가 적반하장 격으로 절도죄로 신고했다. 경찰에서는 신고가 들어온 이상 조사가 필요하다면 출석을 요구했다. 태어나 처음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때 나는 당당했다. 잘못은 인정했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명백히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도 전후 사정은 참작이 될 거라 했다. 하지만 동료와 모의했기 때문에 특수절도에 해당되고 부득이 검찰로 송치 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사 앞에서도 당당했다. 이미 내용을 파악한 검사도 길게 묻지 않았다. 자필 반성문을 받고 기소유예 5년으로 사건을 종결짓겠다고 말했다.

법은 내 행동을 범죄라고 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의 말에 따르라고 했다. 조사가 필요하니 정해진 날짜에 출석하라고 했다. 출석하지 않으면 보다 엄중히 처벌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요구에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말 한마디가 내 행동을 결정지었다. 피의자이니 시키는 대로 했다.


직장을 다니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제한된다. 평일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맡은 역할을 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지시한 일을 하고, 때로는 원치 않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 또 다른 의미의 피의자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범죄자와 다른 점은 직장인은 월급을 받고 일한다는 점이다. 월급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것이다. 많은 직장인은 회사가 시키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안 하려고 한다. 일을 더 한다고 월급을 더 주지 않고, 덜 한다고 월급을 적게 주지 않는다. 그러니 딱 정해진 만큼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 여긴다.


서른 살부터 지금 직업을 시작했다. 직장을 아홉 번 옮기며 같은 일을 해왔다. 월급을 받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회사에 받쳤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을 때라 직장만 찾아 옮겨 다녔다. 20년 넘게 남이 시키는 일만 한 덕분에 그나마 생활은 안정됐다. 하지만 직장이 언제까지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의 쓸모가 다 하면 내가 설자리는 사라진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말이다. 그러니 쓸모를 다 하기 전에 또 다른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이제까지 시키는 일만 했다면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오롯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답하면서 내 일을 찾았다.


6년째 내 의지대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월급이 필요해 회사가 요구하는 일은 한다. 하지만 출근 전 퇴근 후 내 시간을 이용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온전히 내 의지에 따라서 말이다. 글 잘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글을 쓴다. 내 글에 더 좋은 내용을 담기 위해 항상 책을 읽는다. 공부한 내용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 강의도 한다. 누가 시켜서 선택한 게 아니다. 직장 때문에 시간이 빠듯하지만 그래도 매일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그 결과가 쌓여 지금의 내가 있다. 오롯이 내 선택과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문장을 피동보다 능동형으로 쓰라고 한다. 피동은 당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 의지대로 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니 '기분이 나빠졌다', '돈이 쓰여졌다'처럼 의지가 안 보인다. 반대로 능동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빴다', '돈을 썼다'처럼 의지를 담아 쓰는 글이다. 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의 정신과 태도가 담긴다고 한다. 능동적인 표현을 쓰면 삶도 그렇게 바뀐다고 했다. 내가 쓰는 말이 곧 내가 된다는 의미이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능동보다 피동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직장을 벗어나야 한다. 그때는 피동이 아닌 능동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더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게 된다. 죄를 지어 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문장도 말도 생각도 능동형으로 바뀌면 삶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9417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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