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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11. 2023

교환받은 헤드폰이 뭐라고

글쓰기 수월해지는 메모 활용법


지난 연말 눈여겨본 헤드폰 브랜드에서 일부 제품에 30퍼센트 할인 판매했다. 마침 소리 없이 내린 눈처럼 카드사 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이때를 놓치면 후회하지 싶어 질렀다. 이틀 뒤 받아본 제품은 색깔과 디자인 음질까지 만족스러웠다. 헤드폰을 통해 듣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였다면 이미 늘어지고 남을 만큼 자주 듣던 앨범이다. 듣는 재미 덕분에 중년에도 헤드폰 끼고 길거리를 걷는다. 남이 보든 말든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듣는 중간 끊기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스마트폰의 문제인가 싶었다. 아니면 주변에 또 다른 블루투스 장비와 충돌을 일으키는 것일 수 있었다. 몇 달을 두고 봤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조건에 들어도 끊기는 현상은 더 자주 생겼다. 헤드폰에 문제가 있다고 짐작이 갔다. 판매사 홈페이지에서 비슷한 증상으로 A/S를 받은 게 있는지 찾아봤다. 인터넷에서도 같은 증상을 경험한 사례가 있는지 찾았다. 또 몇 주가 지났고 그 사이 증상은 반복됐다.


연차를 내고 쉬는 날 작정하고 판매사에 문의 전화를 했다. 상담원은 내 말을 귀 기울여줬고, 친절한 목소리로 증상 확인을 위해 A/S 접수를 해달라고 안내했다. 이튿날 택배를 이용해 센터로 보냈다. 접수가 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1주일이 지났다. 어제 판매사로부터 다시 택배를 받았다. 수리가 잘 되었길 바라며 박스를 열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내심 새 제품이 오길 바랐다. 짐작건대 수리가 될 증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증기간 내여서 새 제품으로 교환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작년 연말 들뜬 기분으로 박스를 뜯었던 그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눈앞에 비닐 포장 그대로 새 제품이 있었다. 역시 고객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이는 회사다웠다. 만족도 설문을 한다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10점을 더 얹어주고 싶다. 만족스러운 기분도 잠시, 엉뚱한 생각이 기어올랐다. '이걸 팔면 어떨까?' '새 제품이니 절반 가격에 당근에서 팔아볼까?' '판다고 그들이 알까?' 책 쓰기 수업을 듣는 동안 한쪽으로 밀어놨다. 수업을 들으며 생각은 계속 헤드폰에 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원래 제품이 수리된 채 왔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팔겠다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대를 채워주지 않은 판매사에 소심하게나마 실망했을 수 있다. 새 제품을 받고 보니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사람 마음 갈대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욕심은 본능이구나 싶었다. 수시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사는 것도 잘 사는 요령이라고 생각한다. 시시때때로 바람에 풍선이 날아다니듯 마음이 흔들리면 삶도 휘둘리지 싶다. 주변에서 나를 흔들어도 내 안에 중심을 잡고 사는 지혜가 필요할 테다.


글을 쓸 때도 수시로 변하는 마음에 탓에 내용이 바뀌거나 끝을 못 맺는 경우가 더러 있다. 처음 생각했던 주제가 글을 쓰다 보니 다른 생각과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꿈에 대해 쓰다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탓하며 나 자신을 원망하는 내용으로 바뀌기도 한다. 동료애 대해 험담을 쓰다가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끝나기도 한다. 내용이 뒤죽박죽이니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다. 결국 쓰고 나면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 간단하게 메모를 해두면 도움이 된다. 쓰고 싶은 내용에 들어갈 키워드나 말하고 싶은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적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쓰다가 막히는 부분에서 메모를 다시 보면서 다음 내용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메모는 글을 쓰는 내내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 한다. 내 글이, 내 생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안내자 역할을 한다. 어렵지도 않다. 단지 단어 몇 개, 한두 문장 적는 게 전부다. 내가 알기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작가 대부분이 메모 습관을 가졌다. 평소에도 메모하고 글을 쓸 때도 메모부터 시작한다. 메모에서 한 편의 글이 시작되고, 그 글이 모여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글도 '사람 마음 간사함 때때로 바뀌는 마음 글도 의미도 수시로 바뀐다'라고 메모하고 시작했다. 내가 겪은 일을 쓰고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적어주면 제법 그럴듯한 한 편이 된다. 경험한 일을 있는 그대로 적어주면 분량도 채워진다. 마지막에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으면 된다. 메모로 소재를 정하고 이 글처럼 경험을 적고 메시지를 쓰는 구성이면 어렵지 않게 한 편 쓸 수 있다. 시작은 무엇보다 메모다. 메모는 글감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단 몇 단어가 중심을 잡아준다. 중심을 잡고 쓴 덕분에 그럴듯한 한 편이 완성된다. 우리 삶에도 중심을 잡아야 하는 때가 있다. 나처럼 몇 만 원 벌어보겠다고 상대의 호의를 잊는 간사한 마음이 들 때가 그중 하나다. 다행히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면 매일 쓰는 글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알아챌 수 있으니 말이다. 메모한 단어들이 한 편의 글에 중심이 되어주듯, 내가 쓰는 글이 모이면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어줄 거로 생각한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9598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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