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May 09. 2023

문장의 시작과 끝은 정해진대로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읽고 싶은 책만 찾아 읽어도 평생이 모자랄 수 있다. 재미없는 책을 붙잡고 있기보다 관심 가는 책을 찾아 읽는 게 더 효과 있다. 호기심에 책을 폈지만 읽는 게 괴로운 책도 있다. 이는 독자의 잘못이 아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지 못한 저자의 잘못이다.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잘 읽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기보다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완독을 못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가면 안 된다고 여긴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완독해도 그 책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시간을 두고 꼭꼭 씹어 먹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게 정성껏 읽어야 할 책은 많지 않다. 책을 읽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얻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넓게 읽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심사에 따라 이 책 저 책 옮겨 타기가 필요한 것이다.


책을 미련하게 읽었었다. 한 권을 펴면 끝까지 다 읽었다. 그렇게 읽은 게 1천 권이 넘었다. 양으로 승부한다는 각오로 읽었다. 설령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적어도 하나 만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자고 했다. 그때는 시작했으면 끝을 보는 게 당연한 독서를 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그 덕분에 꾸준히 읽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많이 읽은 만큼 지식이 빵빵해졌는지 잘 모르겠다. 독서로 단기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게 아니니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까지 노력한 탓에 책을 꺼내 드는 게 당연한 습관이 되었다. 시작에 부담을 지웠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완독의 부담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읽어도 독서로써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안 읽은 부분은 언제든 읽게 될 테니 말이다. 결국 책을 읽는 시작과 끝은 스스로 정할 필요 있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다는 의미이다. 독서는 고독한 행위이다. 남의 방해 없이 홀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만큼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노력이 자신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고귀한 행위임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 시작과 끝을 정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읽는 행위는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쓰는 행위에서는 정반대이다. 문장을 쓸 때는 시작과 끝이 법칙처럼 정해져 있다. 바로 주술 호응이다.

나는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새벽에 떠났다.

나는 오늘도 출근하기 위해 새벽에 나왔다.

위 문장보다 아래 문장의 주술 호응이 맞다. '떠났다'라는 원래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행위를 말한다. 잠깐이 아닌 제법 긴 시간 동안 벗어나거나 관계에서 멀어질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출근은 퇴근과 한 쌍이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왔다면 퇴근하면 집에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떠났다 보다 나왔다가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얻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소설을 읽어도 결론은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문장의 술어는 주어를 쓸 때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열린 결말처럼 쓰는 사람마다 다르게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주어는 물론 술어도 그에 맞게 써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산다. 옷은 잠깐 쪽팔리고 다시 갈아입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쓰면 고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쩌면 호응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테니 말이다. 주술 호응 또한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독서가 답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얻기도 하겠지만, 좋은 문장을 쓰게 되는 건 덤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술 호응뿐 아니라 올바른 문장을 쓰는 건 여전히 어렵다. 정신없이 쓰다 보면 실수도 하고 쉬운 걸 놓치기도 한다. 잘 쓰는 게 단번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잘 살기 위해 평생 책을 읽어야 하듯, 잘 쓰기 위해서도 꾸준히 읽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글도 삶도 노력하는 만큼 좋아지는 건 불변의 진리라 믿는다. 누구도 예외 없다. "삶을 잘 살려고 노력하면 글이 좋아지고,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면 삶도 나아진다." 내가 한 말이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되고, 인생은 쓰는 대로 된다." 이 또한 내가 믿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썼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일 또 쓴다. 내일도 더 나아지길 바라면서.



https://m.blog.naver.com/motifree33/223095989385


매거진의 이전글 가까울수록 좋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