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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12. 2023

거절 덕분에 산다

투고와 거절은 동전의 양면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아홉 번째 직장이다. 이곳은 서류전형 없이 면접 봤고 곧바로 입사가 확정됐다. 먼저 입사했던 사수의 추천 덕분이었다. 이전까지 여덟 곳에 입사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수시로 수많은 곳에 입사지원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나마 면접 기회가 주어지면 다행이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면접이 합격을 의미하지 않았다. 면접까지 보고 떨어지면 더 아쉬움이 컸다. 나를 못 알아보는 면접관을 원망하기도 했다. 포기할 수 없어서 수많은 거절에도 다시 전송 버튼을 눌렀었다.


이제까지 여덟 곳의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수많은 거절을 당했다. 면접 기회를 잡기 위해 끊임없이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거절에도 익숙해졌던 것 같다. 입사지원서를 보낼 때 대충 감이 오는 곳도 있다. 안 될 걸 알면서 지원이나 해보자는 식이었다. 요행을 바랐다. 반대로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에서 어김없이 면접 기회가 주어졌다. 잔뜩 기대하고 면접을 보지만 예상 못 한 변수는 늘 있었다. 내 이력도 안 봤는지 상관없는 직무로 채용하겠다는 황당한 곳도 여럿 있었다. 그것도 일종의 거절일 수 있었다. 막상 면접을 보니 뽑기에는 애매해서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니었나 싶다.


수많은 거절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는 직장을 구하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직업을 바꿀 용기도,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무모한 도전을 하느니 시간이 걸려도 뽑아 주는 곳이면 어디든 입사하는 게 더 나았다고 판단했었다. 그래서 거절에 더 익숙해져야 했다. 거절당한다고 포기하면 조금 과장해 삶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마음으로는 간절했지만 정작 상대방이 나를 뽑아야 할 이유를 만들지 않았다. 보여줄 만한 장점이나 능력이 없었다. 고만고만한 경력에 아무리 화장 한 들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직장을 마지막으로 이 직업에서 은퇴할 생각이다. 그러니 더는 입사지원서 낼 일이 없다. 이 말은 거절당할 일이 없을 거라는 의미다. 아니었다. 작가에겐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 있다. 출간을 위한 투고다. 지금까지 네 권의 원고를 썼고 투고했다. 그중 한 권을 출간했다. 나머지 세 권은 수많은 거절 메일을 받았다. 거절당했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퇴고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다. 내 글을 원하는 출판사에 선택받을 수 있게 한 번 더 수정하는 기회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한 번에 든 건 아니었다. 막상 거절에 작아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 번에 100여 곳씩 총 세 번에 걸쳐 투고했었다. 첫 번째 투고에 계약이 되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3차까지 가도 선택받지 못했었다. 이 과정이 보통 두 달 이상 걸린다. 투고 메일 보낸다고 바로 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뒤에 회신해 준다. 그나마 메일 보내주는 곳은 양반이다. 거의 모든 출판사는 성능 뛰어난 흡음재 같았다. 그렇다고 일일이 전화해 물어볼 수도 없다. 내가 알기로 전화로 물어보는 작가를 싫어한다고 들었다. 찍히는 거나 다름없다. 매일 쏟아지는 메일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벅찬데 전화까지 하면 일종의 룰을 깨는 거였다.


그러니 답이 오면 고맙게 받고 답이 안 오면 잊으면 그만이다. 그래야 거절에 익숙해질 수 있다. 2년 전 처음 투고했을 때는 이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직장을 구할 때 거절과는 성격이 달랐다. 이제 와 생각하면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왕이면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의 노력을 인정해 줄 거로 믿었다. 원고를 쓰기 위해 들인 수개월의 노력을 그들은 알아줄 거로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냉정하지 못했다. 작가라는 직업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에 현실감이 떨어졌던 것 같다.


일뿐만 아니라 인생도 거절의 연속인 것 같다. 술 한잔 생각날 때 바쁘다며 거절하는 친구, 바쁠 때 도와주지 않는 동료의 거절, 먹고 싶은 걸 만들어주지 않는 엄마, 놀고 싶다는 아이의 요구를 피곤하다며 외면하는 아빠. 거절당한다고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 예외로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져 누군가 도와주길 바라는 이들을 외면하면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지 않고는 거절하는 이도 당하는 이도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듯 아무렇지 않게 원래대로 돌아간다.


"거절당하는 순간에는 가장 먼저 감정을 다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나 자신을 거절과 분리할 수 있고, 거절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미래의 경로 설정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꾼 거절》 - 제시카 배컬


거절당하는 순간은 당혹스럽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받아들여지는 경험보다 거절당하는 횟수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그때마다 세상 다 잃은 듯한 감정으로 살 수는 없다. 거절에 익숙해질수록 내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탄력성도 커지는 것 같다. 상대의 거절 표시에 내 감정을 분리하는 것이다. 물론 그 순간이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감정을 분리하려는 노력이 자신을 덜 힘들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다. 거절도 많이 당해본 사람이 덜 상처받는다. 거절당한 횟수가 쌓일수록 거절 이후의 태도를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수백 번의 거절 메일, 셀 수 없는 서류 전형 탈락과 불합격까지. 거절은 어떤 면에서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 거절에 의연해질수록 자존감도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와 맞는 기회를 못 만났을 뿐 내가 틀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덟 번 이직에 성공하고 첫 책을 출간한 내가 그랬다. 거절에도 꿋꿋하게 나를 믿고 밀고 나갔기에 또 다른 기회가 생겼다. 그러니 거절에 의연해질 필요 있다.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때는 분명 온다. 포기하지 않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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