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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May 13. 2023

수선이 필요 없는 바지,
수정이 필요 없는 문장


몇 주 동안 눈여겨본 바지를 카드 포인트로 샀다. 여름에 입기 좋은 두께와 재질이었다. 여름에 땀 때문에 애를 먹는 나에게 필요해 보였다. 주문 버튼을 누르기까지 망설였다. 온라인으로 바지를 살 때는 바지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매장에서 사면 입어보고 그 자리에서 수선하면 된다. 매장이든 온라인이든 이제까지 샀던 바지는 전부 기장을 줄여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 같았다. 다른 제품과 달리 바지 기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처럼 키 작은 고객에게 알맞은 길이로 제작했단다. 나와 비슷한 체형에게 딱 맞았다는 후기도 봤다. 믿어보기로 했다. 주문한 이튿날 도착했다. 입어보니 수선이 필요 없게 잘 맞았다. 이 집 바지 참 잘 만든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그동안 쌓아둔 카드 포인트로 구매해서 뿌듯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선하지 않아서 좋았다. 키 작은 게 흠은 아니지만 바지를 살 때면 늘 작은 키를 원망했었다. 학교 다닐 때도 친구들과 가끔 동대문에 옷 사러 갔었다. 취향에 따라 입는 옷은 달랐지만 나는 늘 기장을 줄여 입어야 했다. 수선하지 않고 입는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동대문에서 사는 옷은 대부분 큰 키에 맞춰 나온다. 그러니 작은 키는 밑단은 물론 통까지 줄여 입을 때도 있다. 길이만 줄여 입으면 밑동이 헐렁해져 키가 더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지를 사려면 수선비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쇼핑은 수선비를 아껴서 좋았고, 수선 안 하고 입어서 더 만족했다.


옷에 관심은 있지만 유난 떨며 입지는 않는다. 상의만 매일 갈아입으며 청바지 한 벌로 일주일 버틴다. 색깔을 맞춘다든지 디자인 통일 같은 건 모른다. 다행히 복장 규정이 없는 회사다. 알아서 깔끔하게 입으면 된다. 내가 옷을 선택하는 기준도 몸이 편하면 그만이다. 그나마 아내 생각해 깔끔하게 입으려고 한다. 옷은 주로 내가 사 입었지만, 언젠가부터 아내에게 의견을 묻거나 아내가 사주는 옷을 입는다. 자연히 아내의 취향대로 입게 되었다. 물론 아내도 패션 감각이 뛰어나지 않아서 의견 충돌 없이 고르고 입는다. 이런 게 부창부수인가 보다. 둘 중 한쪽이 유별났다면 아마도 옷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까 싶다. 옷에 대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만큼만 관심 가지면 좋겠다.


글쓰기를 배운 적 없었다. 무작정 쓰기 시작했다. 문장을 어떻게 쓰는지, 구성이 무엇인지,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 담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썼다. 하나씩 배우면서 알았다. 그동안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를.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썼던 것 같다. 내 몸에 안 맞아도 남이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옷만 입은 꼴이었다. 문장은 치렁치렁했다. 다양한 형용사를 남발했다. 조사는 내 마음대로 썼다. 접속사는 항상 필요했다. 부사를 써야 의미 전달될 것 같았다. 아니, 맞춤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겠다'라는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처럼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게 내가 쓰는 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마디로 글 같지 않은 글을 썼었다.


6년째 매일 쓰고 있지만 여전히 고만고만한 글을 쓰고 있다. 그나마 이것저것 배워서 처음보다는 정리된 문장을 쓰려고 한다. 문장은 짧게, 부사 형용사는 필요할 때만, 조사는 의미에 맞게, 접속사는 덜어내려고 애쓴다. 논리가 필요한 글, 경험을 적는 글, 주장하고 싶은 내용에 맞는 구성을 활용해 적는다. 배운 대로 하나씩 적용해 보면서 조금 더 나은 글을 쓰려고 연습한다. 셔츠 한 벌을 살 때도 색, 디자인, 사이즈, 가격 등 고려해 여러 벌을 입어보고 산다. 좋은 글도 적확한 표현을 찾고 기본기를 따르고 구성에 맞게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벌 입어보면서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에 따라 산 옷은 몇 번 안 입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기분에 따라 쓴 글도 독자에게 외면받기는 마찬가지다. 옷도 정성을 들여야 오래 입는다. 글도 정성껏 쓰면 사랑받는다.


나이 들수록 화려한 옷보다 편한 옷을 찾는다. 기능성 옷감으로 만든 옷이면 더 좋다. 면 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태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아무 옷이나 입어도 내가 신경 써서 챙겨 입는 것보다 더 옷을 잘 입어 보인다. 몸의 비율이 좋거나 몸매 관리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바탕이 좋은 사람이다. 타고난 비율이야 어쩔 수 없지만, 운동이나 관리로 몸매는 얼마든 유지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좋은 글이 갖는 몇 가지 조건만 배우고 연습하면 언제든 잘 읽히는 글을 쓸 수 있다. 태가 좋으면 색깔만 바꿔 입어도 분위기가 달라지듯, 연습이 되어 있으면 소재만 달리해도 꽤 괜찮은 글을 써낼 수 있다. 내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글쓰기 관련 책에서 그랬다. 또 글 좀 쓰는 작가들이 한 말이기도 하다. 이미 검증된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좋은 글을 써보고 싶다면 그들이 한 말을 믿고 꼭 필요한 것부터 배웠으면 좋겠다. 배우고 연습하는 만큼 내 글이 좋아지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옷 좀 입는 연예인이 무심한 듯 걸친 옷에 열광하듯, 내가 무심하게 쓴 글에 많은 사람이 공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쓰고 싶다 그런 글.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095989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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