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May 23. 2023

내 곁에 두어야 할 사람


자식 망치는 부모의 행동이 있습니다. 무조건 자식 싸고도는 겁니다. 잘잘못을 따져야 할 땐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대야 하는 게 부모입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아이 대신 부모가 냉정하게 판단해 옳고 그름을 가려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틀린 게 무엇인지 모르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여러 부모가 내 자식을 먼저 챙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자식의 잘못은 먼저 안 보고 남의 자식 잘못만 크게 보는 겁니다. 그래봐야 결국 내 자식만 망치는 꼴입니다. 그러니 부모에게는 냉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는 눈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만 자식이 아닙니다. 수주 동안 밤낮없이 고민하고 자료 찾고 스케치하고 지우기를 반복했던 건축설계 과제도 자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주어진 조건에 맞게 건축물 디자인부터 모형 제작까지 해내는 과목입니다. 과제 하나에 보통 6주 정도 걸립니다. 필수 과목이라 좋은 점수받기 위해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디자인에 정답은 없습니다. 내 딴에 정답이라고 찾아가면 담당 교수는 가차 없이 난도질합니다. 제삼자의 눈은 날카롭고 냉정합니다. 담당 교수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논리로 대처하지 못하면 틀린 답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럴 때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대학 이후 20년이나 지나 창작 하려니 머리가 잘 안 돌아갑니다. 여전히 직장에서는 창작과는 거리가 먼 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직업과 연결점이 없는 작가가 되려니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머리 회전이라도 빠르면 좋겠는데 나이 탓인지 더디기만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책을 쓰려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엉덩이 힘으로 글 쓴다고 하지만, 이왕이면 근사한 아이디어가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몇 달에 걸쳐 엉덩이로 쓰고 머리를 쥐어짜 내다보니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내 글이 가장 잘나 보입니다. 지적당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가끔 주변 분이 자신의 글을 봐달라고 보내옵니다. 저도 자랑할 수준은 아니어도 보고 들은 게 있으니 조금 보이기는 합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손댈 부분이 보입니다. 내 자식, 내 글에는 안 보이던 게 남의 글에는 왜 그리 잘 보일까요? 상대방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줄 마음에 꼼꼼하게 체크해 돌려보냅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보내왔어도 난도질당한 자신의 글을 보면 기분이 썩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분이 나쁘라고 수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더 나은 글을 쓰기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솔직히 한 페이지 정도 수정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내 글 쓸 때보다 몇 배는 더 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수고를 알아주면 감사하고 알아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에게 옳은 말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자 은인이라고 했습니다. 할 말이 있는데도 눈치만 보고 안 하는 건 오히려 상대를 병들게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바른말하려면 그만큼 용기도 필요합니다. 또 확고한 신념도 필요하고요. 무엇보다 내 자식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식의 잘못에 눈 감지 않고 뼈를 깎는 아픔을 참고 따끔하게 혼내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것입니다. 내 글에 누구보다 냉정하게 지적해 주는 상대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모질게 말해야 하는 당사자가 더 힘들 겁니다. 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을 테니까요.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108701384


매거진의 이전글 문장도 공부가 필요한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