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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0. 2023

징징거려도 할 건 하면서


달리기 위해 운동복을 챙겨 왔다. 1시간 이른 퇴근 중이라 조금 서두르면 호수 공원 한 바퀴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말 이틀 뛰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하다면 주중 두 번 정도 더 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니 옷을 챙겨 다니는 부지런을 떨어보기로 했다. 한편으로 심란한 요즘 달리기라도 하면 마음이 풀릴까 싶은 기대도 있었다.


6시 10분, 옷을 갈아입고 스트레칭했다. 반팔에 반바지, 드러난 피부에 닿은 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산책 나오기 이른 시간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해도 기운을 잃어가는 터라 달리기 수월했다.


달리기가 좋은 건 단순해서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출발선에서 출발해 목적지까지 도착하면 된다. 코스도 정해져 있다. 바닥에 드려진 선을 따라 내 속도대로 달리기만 하면 된다. 욕심을 부릴 필요도 없다. 경쟁할 대상도 없으니. 기록을 신경 쓸 필요 없다. 순위 싸움이 아니니 말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속도를 조절하며 도착지점까지 달리면 그만이다. 모든 게 단순하다. 단순할수록 선명해진다. 달리는 동안 내 머리도 단순하고 선명해지는 것 같다.


숫자 때문에 며칠 동안 고민하고 답답해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사람인지라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 꼴이었다. 걱정은 실체가 없다고 했다. 실체가 없는 것에 매달려 기운만 뺏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나 붙잡고 징징거리고 싶었다. 징징거리면 누군가 시원한 해답을 주길 바랐다. 따지면 답을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순리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팔다리를 움직이며 정해진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생각은 단순해졌다. 생각이 단순해지니 문제도 선명해졌다. 문제가 선명해지니 나름 답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안 모이면 어떤가? 조회 수가 적으면 어떤가? 단순하게 생각하자. 아직은 때가 아닌 거다. 그렇다고 멈추지는 말자. 달리다가 멈추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상황이 어떠하든 그냥 달리면 달리는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달리는 동안은 적어도 다리에 근육이 붙고 폐활량도 커지고 흐르는 땀에 피부도 좋아진다. 멈추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걱정하며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달리기를 하는 지금은 달리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매주 달린 덕분에 호수 공원 완주가 조금씩 수월해지는 중이다. 숨이 덜 차다.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거다. 꾸준히 달린 덕분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이득이 된다. 매일 글을 쓴 덕분에 책도 몇 권 냈고, 매일 책을 읽은 덕분에 독서모임을 운영 중이고, 글공부를 꾸준히 한 덕분에 글쓰기 코치가 된 것처럼. 오늘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이런 이득이 생긴 거라 생각한다.


세상일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책 읽고 글 쓰는 요즘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다. 그래도 하루도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 때문에 걱정을 키우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나만 손해다. 그 자리에 멈추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계속 달리다 보면 결국 목적지에 닿는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오늘 정해놓은 일을 하는 거다. 가끔은 징징거려도 된다. 사람이니까. 다만 징징거려도 할 건 하면서 말이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줄 테니 말이다. 사람은 믿는 대로 된다고 했다. 믿으면 분명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 한편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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