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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2. 2023

내 인생에서 술을 물리친 두 가지


20대 후반을 반 백수로 지냈다. 직장은 있었지만 월급은 못 받았다. 회사라고 차렸지만 일감이 없었다. 그나마 두 끼는 해결해 줬다. 월급이 없으니 사람 만날 생각을 못 했다. 밥 먹든 술 마시든 돈이 있어야 했으니 말이다. 가끔 대표가 사주는 삼겹살에 소주가 번듯하게 마시는 술자리였다. 대표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취기가 오르기도 전에 끝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풀리지 않는 인생, 술자리에서 신세 한탄이라도 마음껏 하고 싶었다. 그때 내가 마음 터놓고 말할 상대는 고등학교 친구 현석이와 성진이가 전부였다.


그 둘은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했고 착실히 다녔다. 둘의 월급날이 돌아오면 한 번씩 술을 사줬다. 내 사정을 알던 터라 나도 부담 갖지 않고 기꺼이 함께 했다. 뻔한 월급이라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가 전부였다. 젊음이 무기였던 때라 안주보다 술을 부어 넣었다. 소주로 시작한 1차, 맥주로 입가심하는 2차, 헤어지기 아쉬워 다시 소주로 3차, 늦은 밤 배고프다는 핑계로 4차. 대부분의 술자리가 그런 식이었다. 미리 짜놓은 듯한 코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된다. 물론 매번 그랬던 건 아니다. 흥이 한껏 오르는 날도 있었고 먹고사는 문제로 안개가 가라앉듯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었다. 주량은 그날의 분위기 따라 달랐다. 그러나 20대의 끓어오르는 혈기 탓에 흥이 오르는 날이 더 많았다는 게 함정이다.


24살에 독립한 터라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가도 눈치 볼 사람 없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어도 집에는 찾아갔다. 밤새 속을 게워낼 정도로 마시는 날이 잦았다. 입에서 노란 액체가 나올 즘에야 토악질은 멈췄다. 그때마다 후회가 들었다. 누가 억지로 마시라고 한 적 없었다. 오롯이 내 의지대로 마셔댔다. 절제하지 못했다. 절제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그때는 그렇게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잔뜩 취해야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깨고 나면 달라진 게 없지만 그래도 술이 들어가는 그 순간, 친구와 수다 떠는 그 자리가 유일한 낙이었다.


결혼 후에도 그런 식의 술자리는 계속됐다. 가정을 꾸리고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다, 삶은 나아졌지만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철이 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해 직장을 때려치우길 반복했다. 몇 달 만에 구한 직장도 몇 개월 만에 폐업했고, 수개월치 월급 떼이기 일쑤였다. 그때는 모든 게 못마땅했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고, 뽑아주는 곳 없는 게 원망스러웠고, 노력하지 않는 내가 더 싫었다. 그러니 더 자주 친구와 술을 찾았다. 갖은 핑계로 술을 마셔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는 건 숙취와 카드값뿐이었다.


술이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술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적어도 술 마시는 그 자리에서는 현실감을 잃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잔뜩 취해 웃고 떠드는 동안은 현실이 끼어들 틈 없었다. 술기운을 빌려 일탈했다. 일탈은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다시 돌아오고 나면 후회가 반복되었다. 후회 드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끊을 노력하지 않았다. 술에 못 이겨 한나절을 골골거려도 또다시 술자리를 찾았다. 말로는 술을 끊겠다면서 행동은 그러지 못했다. 이런 악순환이 영원히 반복될 거로 믿었다. 목표와 계획을 갖기 전까지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술을 찾았던 그때는 목표와 계획이 없었다. 아니 목표는 선명하지 않았고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이직이 필요했지만 그에 맞는 역량을 개발하지 않았다. 기껏 세운 목표와 계획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운 좋게 직장이 구해지만 다시 그 생활에 안주했다. 월급만 받으면 됐다. 월급이 안 나오고 나서야 다음을 준비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닥쳐서야 급한 불을 끄는 꼴이었다. 그러니 삶을 내 의지대로 살지 못했다. 끌려다니는 와중에 술은 포기하지 않았다. 술마저 끊으면(끊을 노력하지 않으면서) 기댈 곳이 사라질 것 같았다. 술이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나를 더 믿지 못했다.


560일째 금주 중이다. 술을 끊을 수 있었던 건 선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 덕분이다. 마흔셋부터 책을 읽었고 얼마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일 읽고 쓰면서 작가의 꿈도 갖게 되었다. 작가가 되어 남은 시간은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 꿈은 로또처럼 한순간에 손에 잡히는 게 아니었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될 때까지 사야 하는 것처럼 꿈을 이루려면 될 때까지 지속해야 했다. 매일 반복할 수 있을 때 꿈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러니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고 그게 선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매일 일정량의 책을 읽고 정해놓은 분량의 글을 썼다. 읽은 책이 많아지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태도가 달라지면서 쓰는 글도 달라졌다. 글이 달라지면서 마찬가지로 인생도 달라졌다. 이전과 다른 삶을 경험하면서 내 이야기를 담은 책도 쓰게 되었다. 책을 내겠다는 선명한 목표를 위해 수개월 동안 구체적인 계획을 실천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양의 글을 한 편씩 완성해 갔다. 하루 동안 보내는 시간이 구체적일수록 불필요한 행동이 끼어들 틈을 내어주지 않게 되었다. 지금 삶에 불필요한 건 술과 술자리였다. 불필요한 걸 없애고 이겨낸 나를 더 믿게 되었다.


집에서 습관처럼 마시던 맥주 한 캔도, 즉흥적으로 만났던 술자리도 없앴다. 그 시간을 읽고 쓰는 데 활용했다. 내가 세운 목표와 계획을 하나씩 성취하면서 술은 더 이상 존재가치를 잃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와 계획이 사라지지 않는 한 술이 설자리는 없어 보인다. 내 삶을 갉아먹던 술이라는 악당을 '목표'와 '계획' 덕분에 물리쳤다. 나를 믿지 못하던 내가 목표와 계획을 갖고부터 나를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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