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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7. 2023

[월간 책쓰기] 6월 특강 후기 - 기침 덕분에

성장은 뿌리부터 시작된다

반차 내고 12시에 퇴근했다. 운전하는 동안에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약을 먹었다. 자주 가는 카페에 자리 잡고 강의 자료를 열었다. 조금 더 일찍 내용 정리를 끝냈어야 했는데.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 지나간 시간 후회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할 때다. 지금에 집중하는 건 걱정과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연습 또 연습이다.

병원을 찾았다. 이번이 네 번째다. 이미 받은 약은 거의 다 먹었다. 기침이 나아지지 않아 한 주 더 먹을 약을 받으러 왔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도 지난주 보다 나빠지지 않은 데 만족해하자고 한다. 처치가 끝난 틈을 노려 병원을 찾은 진짜 이유를 내 보였다.

"오늘 저녁 중요한 강의가 있습니다. 2시간 만이라도 기침을 줄일 수 있는 약이 있을까요?"

잠깐 생각하던 의사는 2주 전에 받아 간 약이 남았냐고 물었다. 식탁 위에 몇 개 있었던 게 기억났다. 1시간 전에 1포 먹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예약해 한 스터디룸으로 가기 전 집에 들렀다. 식탁 위에 의사가 말한 약이 보였다. 간절한 기도와 함께 한 포 먹었다. 수업 중에 마실 생강차도 보온병에 담았다. 강의용 의상을 챙겨 스터디룸으로 갔다. 줌 화면을 켜고 PPT 자료를 열었다. 화면을 통해 외모를 바르게 했다. 즐겨 듣는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실수해도 당황하지 말자', '기침해도 괜찮다', '나는 프로다', '강의하는 동안 기침하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3주 전 특강을 공지했을 때부터 기침이 났었다. 약을 매일 먹었지만 기침은 줄지 않았다. 특강 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커졌다. 기침 때문에 통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상대방이 기침 소리에 불쾌해 할까 더 걱정이었다. 시시때때로 나오는 기침에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간혹 목이 간질거리며 터지는 기침은 1분 남짓 계속됐고 배가 당길 정도였다. 목 상태가 이러니 걱정만 쌓였다. 기침 때문에 준비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다. 기침 때문에 강의를 중단하는 사태도 걱정했다. 걱정이 걱정을 낳았다.


3주가 흘렀다. 꾸준히 약 먹고 매일 강의 준비를 했다. 약속된 날이 왔고 어김없이 시작할 시간이 됐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건 준비한 대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내 나름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9시. 화면에 수강생이 보였다. 시작부터 당당하게 말했다.

"강의하는 동안 기침할 수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사람이 숨길 수 없는 게 기침이라고 했다. 약 기운 빌렸다고 기침이 안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당당하게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시작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마음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약 기운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1시간 동안 큰 기침은 없었다. 간간이 잔기침 몇 번 했다. 이 정도면 정신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된다고 믿으니 믿는 대로 됐다.

다행히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걱정은 걱정일 뿐이라고. 아무리 애를 태우고 속을 끓여도 그건 마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일은 막상 일어나 봐야 알 수 있다. 그러니 손에 잡히지 않는 걱정에 에너지를 주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다. 걱정이 줄어들면 불안해 지지 않는다. 고민이 작아지면 나를 믿게 된다. 불안이 줄고 나를 믿으면 당당해질 수 있다. 아마도 큰 실수 없이 강의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음가짐 덕분이었던 것 같다.


세 번째 특강이었다. 처음 보다, 두 번째 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강의에 자신감이 붙는다. 이전에는 수강생 눈치 보고 틀리면 어쩌나 마음 졸였다. 생각을 바꿨다. 나를 믿고 찾아준 수강생이다. 내가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강사에 대한 신뢰가 안 생기면 강의를 들을 이유가 없다. 신뢰는 행동에서 보인다. 내 말에 확신을 갖고 당당한 모습을 보였을 때 믿음도 생길 터다. 그러니 스스로 당당해지자 마음먹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실수도 줄고 발음도 더 또렷해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과정을 즐기면 결과는 당연히 좋아진다. 과정을 건너뛰고 게을리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다. 출간 계약이 파기된 원고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또 다른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기회도 실패로 끝났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시 또 도전 중이다. 결과만 우선시 했다면 지난 2년을 견디지 못했을 터다. 남과 비교하고 자책했다면 포기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실패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더 좋은 기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었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특강 경험이 쌓일수록 더 나은 강의를 할 수 있다. 준비하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킨다. 과정에 충실하면 불안과 걱정도 줄일 수 있다. 불안과 걱정이 줄어든 자리에 믿음과 자신감으로 채운다. 느려도 괜찮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된다. 의심하지 말자.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넓고 깊이 내린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땅을 단단히 움켜쥔 뿌리에서 뻗는 줄기는 더 높이 더 굵게 자란다.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할 거다. 나를 믿고 내 속도대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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