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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18. 2023

과속 단속 카메라 앞에서는


대구에서 현장 소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공사가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다. 나도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하루를 놀면 수백만 원 손해다. 십수 년 숫자를 다뤘던 나여서 누구보다 잘 안다. 주변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있기 마련이다. 공사현장도 마찬가지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 없다. 안 그래도 속상한데 옆에서 한 마디씩 거드는 탓에 안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감독하는 감리가 있었다. 감리의 한 마디가 불쏘시개가 되었고 쓰고 있던 안전모를 집어던지고 현장을 나왔다. 전화기도 꺼버렸다.


차를 몰았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올라탄 도로를 따라 직진했다. 이정표도 눈에 안 들어왔다. 어딘지 모를 곳에 다다르니 고속도로로 빠지는 푯말이 보였다. 달리다 보니 '부산'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를 부산으로 정하고 계속 차를 몰았다.


운전하는 내내 아침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렸다. 무능한 나를 탓했다. 나더러 무능하다고 말하는 사람 없었다. 그들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고, 혼자 느꼈을 뿐이다. 어쩌자고 대구까지 내려왔는지 후회했다. 코로나 탓에 나 말고는 갈 사람이 없기도 했다. 이왕 내려온 건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몇 달만 잘 해내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동안 무색무취였다. 이번이 내 색을 만들 계기였다. 그래서인지 더 잘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현장을 내팽개치고 온 탓에 뒤 수습이 걱정됐다. 여기저기 찾는 전화가 계속 왔지만 받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일이 커지는 꼴이었다. 운전하는 동안 걱정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부산 시내를 지나 달맞이 공원 쪽 바닷가에 차를 세웠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자리 잡았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시켰다. 점심 전이라 매장은 한산했다.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다시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든 현장에서 벗어나는 건 내 잘못이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했던 탓이다. 두어 시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차에 올랐다.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에 전화로 뒷수습했다.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줬다. 하루 일탈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다시 아무 일 없듯 일했다.


며칠 뒤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에 갔었냐고 묻는다. 부산에 간 건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과속카메라에 찍혔다며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왔단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어딘가에서 찍혔나 보다. 시내 제한속도 60킬로미터 구간에서 십여 킬로미터 과속으로 걸렸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신경 쓰느냐 봐야 할 것 올바로 못 봤다. 봐야 할 것 못 보고 지나친 대가는 범칙금 6만 원이었다.


살다 보면 중요한 걸 놓치는 때가 있다. 당장 눈앞 일에 정신이 빼앗겨 미처 못 보는 경우가 생긴다. 놓치고 정신이 빼앗기면 오롯이 본인 손해다. 어떤 대가든 치르게 된다. 과속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방법은 항상 정상 속도로 운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살면서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평정심은 어느 때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닐 테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눈치채는 게 도움이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자신을 돌보는 노력이다. 과속이든 감정이든 과하면 탈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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