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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2. 2023

직장인의 마음을 돌보는 글쓰기

하루 10분만 써도 충분하다


전화가 오는데도 안 받았다. 일부러 피했다. 어떤 말을 할지 알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통화까지 하면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화면에 집중하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한 시간 안에 모든 걸 끝내려면 그래야 했다.


답답했는지 사무실로 전화했다. 내가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눈치였다. 전화를 돌려받았다. 목소리를 일부러 낮게 깔았다. 내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티 내려고 했다. 내 기분이 지금 어떤지 보여주려고 했다. 내 목소리에서 짐작을 했는지 별말 안 한다. 나도 별말 안 하고 바로 끊었다. 그러고는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한 시간도 안 돼 일은 끝났다. 다행히 정리해 놓은 자료가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일이 빨리 끝난 탓인지 기분도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앙금은 남았다. 그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출근하고 얼만 안 돼 관리부로 대표가 전화했다. ##현장 준공금을 청구하라는 내용이었다. 오전 중에 마무리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도 멀리서 들은 나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청구할 준비가 전혀 안 돼있는 상황이었다. 현장 담당자는 다음 주까지 휴가였다. 누가 업무를 맡아야 할지 서로 난감했다. 급한 나머지 상무에게 전화하는 것 같았다. 통화 중 한 마디가 귀에 꽂혔다. 전화기 너머 상무에게 들은 말을 김 과장이 반복했다.

"김 차장님 보러 하라고요?"


아무리 조직에서 상명하복이 당연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위로 올라가는 보고는 온갖 체계를 따지면서 지시할 땐 모든 게 무시되니 말이다. 물론 상황이 급박할 땐 그럴 수도 있다. 아니 급할수록 예의를 지키는 게 필요할 터다. 더군다나 엄연히 업무 담당자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휴가 중이라 대체자를 찾는 게 필요했다. 그러니 더 체계와 예의를 지켜 묻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까라면 까야하는 게 조직이지만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도 예의를 지키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나도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다. 내 일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작은 회사니 서로 돕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을 지키고 예의를 따질 필요는 있다. 네일 내일 구분 없이 한다면 오히려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작은 회사일수록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맡은 업무라면 어떤 상황에서 해내는 게 멀리 봐서 조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바쁘니까 대신해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조직은 물론 개인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서로 간의 선을 명확히 그어주는 게 임원과 대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건 미리 나에게 전화해 양해를 구했으면 나도 군말 안 하고 했을 것이다. 상무의 한 마디는 평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게 했다. 어쩌면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조직 안에서 뚜렷한 색을 갖지 못해서 그런 걸 수 있다. 책임 있는 일을 맡기기엔 역량이 부족해 보이고, 쉬운 일만 시키기엔 경력이 많고, 놀리고 있자니 연봉이 많은 그런 존재일 수도 있다.


오전 내내 똥 같았던 기분이 점심을 먹고 누그러졌다. 마음 한편은 찜찜했지만 해야 할 일은 했다. 집에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내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도 별말 안 했다. 두 시간 강의를 들으며 낮에 일을 잠시 잊었다.


다음 날 새벽, 일기에 전날 일을 적었다. 그때 내 감정, 태도, 마음, 말투 등을 썼다. 쓰면서 나를 되돌아봤다. 옹졸했던 것도 없지 않았다. 충분히 너그러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상무도 월급쟁이다. 까라면 까야하고, 시키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같은 처지이다. 대표는 직원들 사정 일일이 봐주기 이전에 회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자리다. 무엇보다 돈이 걸린 문제라면 더 그렇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내 태도가 다시 보였다. 반성했다.


글로 쓰면 막연하던 생각이 선명해진다. 글을 쓰면 불편했던 감정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눈에 보이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되돌아보면서 잘잘못도 따지게 된다. 잘한 일은 칭찬하고 잘못은 반성하고 실수는 반복하지 않게 다짐한다. 글로 썼을 때만 얻게 되는 효과라 생각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감정의 찌꺼기를 끊임없이 쌓아두었다. 썩고 악취가 나도 치우려 하지 않았다. 그때는 방법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 잊고 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글을 쓰면서 내가 나를 돌보게 되었다. 남이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나를 챙기는 오롯이 나뿐이다. 나를 챙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라고 믿는다. 남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글로 풀어내면 감정에 앙금은 줄일 수 있다. 쓰레기는 치울수록 깨끗해진다. 덜어낼수록 냄새도 안 난다. 나를 돌보고 건강해지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다. 또 상대를 이해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이 모나게 굴어봤자 나만 손해다. 내가 먼저 손해를 보면 상대는 더 미안해하는 게 순리다. 그렇다고 내 공을 티 낼 필요 없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남이 알아주는 게 더 표가 나는 법이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늘 한결같은 태도를 갖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글로 쓰며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다시 다짐하면서 나를 만들어간다. 반복될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거로 믿는다. 글쓰기가 주는 장점이다. 이 정도면 꾸준히 써볼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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