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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9. 2023

한 번은 괜찮겠지?


어쩌다 한 번이 그동안 쌓아온 걸 무너뜨리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듣고도 일어나지 않았나?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4시 50분을 가리켰다. 튀어 오르듯 일어나 욕실로 갔다. 씻고 나오니 5시 10분이다. 평소 같으면 일기를 다 쓰고 나갈 시간이다. 망설이지 않고 일기장을 꺼냈다. 노트를 열고 펜을 잡았다. 늦잠 잔 나에 대해 썼다. 쓰면서 시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늦었다고 해야 할 일을 거르면 어떻게 될까? 한 번 예외를 두면 어떻게 될까? 늦잠 잔 건 이미 일어난 일이다. 어제보다 늦게 출발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집을 나서기 전 꼭 일기를 써왔다. 2년 넘게 그 시간을 지켜왔다. 장소와 시간이 바뀌어도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어떻게든 썼었다. 스스로 정한 원칙이었다. 그러니 늦었다고 서두르기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일상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


일상에 원칙이 없었다. 목표를 세웠지만 끝까지 실천하지 못했다. 시작은 했지만 끝을 본 게 없었다.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오롯이 그 일에만 매달린다 해도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직장을 다니면서 일 이외에 다른 걸 시도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시작도 안 하고, 목표 없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었다. 토익 700점을 받기 위해 수개월 공부했었다. 자격증을 따기 수년 동안 도전했었다. 영어 회화를 익히기 위해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책을 읽어보겠다고 손에 들었던 책만 수십 권이다. 시도는 많았지만 어떤 것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끝까지 될 때까지 해내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고비에 번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게 먼저라며 직장 핑계를 댔었다. 야근, 회식, 출장 등 때때로 생기는 변수에 무너졌다. 직장을 다니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모든 걸 감안하고 꿋꿋이 버텨냈을 때 성과가 나오는 법이다. 알면서도 포기가 쉬웠다. 그럴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그러니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게 당연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켰을 때 성취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6년째 매일 글을 쓰고 있다. 2년 넘게 매일 일기를 써왔다. 그동안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감정에 휘둘리고, 남과 비교하고, 지방 근무, 현장 업무, 여행 등 갖가지 일이 수시로 생겼다. 그래도 이제까지 단 하루도 글을 안 쓴 날 없었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이를 지키는 게 꿈을 이루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외부 환경 때문에 원칙을 안 지키면 일상도 무너진다. 어쩌다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불가항력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게 단 몇 줄이라도 쓸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반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정하고 포기해 버리면 쓰겠다는 의지도 안 생겼을 것이다. 이제까지 매일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어떤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글을 써내겠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 어떤 자리에 있든 양탄자 위를 걷는 인생은 드물다. 누구나 굴곡 있는 삶을 살기 마련이다. 때로는 늦잠도 자고 때로는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원치 않는 출장을 가고, 가족과 긴 시간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순 없다. 또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책하고 후회하고 원망하기보다 반대의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인정하고 후회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시험을 앞뒀다면 회식 후 단 몇 문제라도 풀어낸다.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야근 후 단 한 장이라도 읽어낸다.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다면 늦잠 자도 꼭 몇 줄이라도 써내는 것이다.


한 번은 괜찮겠지가 작은 틈을 만든다. 틈이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일상이 무너졌을 때 피해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내가 그동안 원칙을 지키지 못해서 아홉 번 직장을 옮겼고, 영어 점수, 자격증 이렇다 할 업무 능력도 갖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저마다 나와 비슷한 경험 한두 번을 했을 거로 짐작한다.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적어도 이제부터는 과거의 자신과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시간은 유한하다. 기회가 매번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바라든 일상을 지켰을 때 얻을 수 있다. 원칙을 잃지 않았을 때 성취할 수 있다. 예외를 두지 않으면 삶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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