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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7. 2023

흉터가 보이지 않는다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분식집을 했었다.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었다. 준비를 끝낸 나는 들뜬 마음으로 가게 안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엄마가 불렀는지는 가게로 뛰어들어왔다. 그때 가게 문은 유리가 위아래로 분리된 새시였다. 어른 허리 정도 키였던 나는 뛰어오는 속도로 아래 유리문을 밀고 들어왔다. 매번 그렇게 열고 드나들었다. 그날은 문 안쪽에 누가 서 있었다. 서있던 사람 탓에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고 내 힘을 이기지 못한 유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유리는 내 가슴 가운데 박혔다. 그 뒤로 기억이 없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열 바늘 넘게 꿰맸다고 들었다. 제법 큰 상처였지만 입원하지 않았다. 돈이 없었던 것 같다. 상처가 아물면 실밥을 풀러 오라고 했다. 그 뒤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흉터는 남았다. 덧났는지 집게손가락 굵기와 길이만큼 흉이 남았다. 여담이지만 가슴에 난 상처 때문에 비행기 조종사는 될 수 없다고 들었다. 물론 조종사가 될 마음은 없었지만,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씁쓸했다.


결혼한 이듬해 맹장 수술로 5일 동안 입원했었다. 살면서 처음 입원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가슴이 찢어진 사고 이후 가장 크게 아팠던 거다. 이것 말고는 이제까지 큰 사건 사고 없이 건강하게 살아왔다. 몸은 건강하게 살아왔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몸에 난 상처는 보이고 치료가 되지만, 마음에 나는 상처는 그렇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마음의 짐도 있었다. 하는 일을 잘 못하니 안정된 직장을 갖지도 못했다. 고만고만한 직장을 다니니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다. 사람 사이 문제는 대부분 돈이었다.


회사가 작으면 일의 경계도 모호하다. 바쁘면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는다. 어쩌다 발을 들이면 싫어도 내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피하고 싶은 게 돈과 엮이는 일이다. 공사를 진행하려면 제때 돈을 줘야 한다. 일을 해주고 돈을 못 받는다면 누구 일하겠는가. 일을 시켜야 하는 실무자는 돈이 곧 경쟁력이다. 돈을 잘 주면 일도 시키기 수월하다. 반대로 대금을 제때 주지 못하면 굽신거리며 부탁하는 게 다반사다. 그러니 일도 재미없었다.


영업 담당자는 수금도 업무 중 하나다. 공사 담당자는 돈이 오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만 한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영업을 담당하는 임원은 수금은 챙기지 않았다. 본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수금까지 내 일이 됐다. 매달 줘야 할 돈과 받아야 할 돈을 챙기는 게 내 일이었다. 줘야 할 돈은 매달 발생한다. 받을 돈이 제때 들어오면 좋겠지만 건설업계 관행상, 특히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수금은 미지수다. 그러니 내 돈을 먼저 투자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하지만 영세한 기업이 여윳돈을 갖고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이 생긴다. 결국 돈이 돌지 않으면 그 사이에 낀 직원만 돌아버리는 상황이 생긴다.


매달 말이면 거래처에 사정을 봐달라고 전화하는 게 큰 업무였다. 전화하기 전에 걸려오는 곳은 억하심정으로 따지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면 납작 엎드려 봐 달라고 애원하는 수밖에 없다. 일을 시킬 땐 당당했지만 돈을 줄 땐 한없이 작아졌다. 참다못한 거래처에서 심한 말을 뱉어도 담아둘 수밖에 없다. 사람 사이 거리를 지키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상처받기 일쑤였다. 누구에게 하소연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돈을 내보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중간에 끼여 욕이며 원망이며 온갖 걸 다 받아내야 했다. 그때는 마음을 풀 수 있는 게 술밖에 없었다. 마시는 양이 적든 많든 술에 의지해 매일을 살았다.


직장 생활하다 보면 이 일 저 일 다 겪는다. 돈이 문제가 돼 상대에게 상처 주기도 한다. 돈을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을 때는 말로든 몸으로든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때는 말로 입는 상처가 전부였다. 드러내지도 못했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스스로 풀고 회복해야 했다. 그런 생활을 2년 가까이했다. 직장을 다니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도 없었다. 다른 일을 한 들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 겪을 수 있을 터였다. 외톨이로 살지 않는 이상 마음의 상처는 스스로 치료하는 지혜가 필요했다.


5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다행히 돈 문제에서는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스트레스받고 상대방에게 상처도 꾸준히 받는 중이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건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술도 끊었다. 술은 해결 방법이 아니다. 마실 땐 몰라도 깨고 나면 늘 더 큰 문제가 생기니 말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읽고 쓰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이 중요하듯 상대의 마음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이해가 먼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사례를 책으로 접하며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완벽히 이해하는 건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하다.


또 하나는 내 마음을 써보는 것이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적어보고 내 마음이 어땠는지 바라본다. 반복적으로 쓰면서 내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 훈련이 되면 비슷한 상황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물론 모든 순간 그러지는 못한다.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잘한 일에는 의연해질 수 있다.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덜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점점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어릴 때 다친 눈에 보이는 상처는 평생 가도 그곳에 남는다. 살면서 다친 마음의 상처도 보이지 않지만 평생 남는다. 꿰매고 약을 발라주지도 못한다. 스스로 치료하고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처럼 읽고 쓰면서 차츰 회복할 수도 있다. 아니면 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 치료할 수도 있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마음의 상처는 담아둘수록 섞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면 더 큰 해를 입힌다. 더 늦기 전에 치료하는 게 남은 시간 건강하게 지내는 지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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