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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3. 2023

이 방법 실천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1시간짜리 강연을 2주 동안 준비했다. PPT 자료를 만들면서 구성을 짰다. 도입부, 본론, 결론에 들어갈 사례와 주제를 정리했다. 각각의 내용을 암기하기 위한 대본도 작성했다. 대본을 프린트해 PPT 화면과 맞춰가며 읽었다. 화면과 대본을 몇 번 맞춰보고 자신감이 생겼다. 강연 전 며칠은 대본을 들고 다니며 암기할 정도로 달달 외웠다. 대본은 스크립트 화면처럼 머릿속에 장착되었다. 어느 때부터 대본 없이도 술술 머릿속에 떠올랐다. 슬슬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약속된 날이 됐다.


화면에는 90명이 입장했다는 숫자가 보였다. 모니터가 작아서 몇 명만 얼굴이 보였다. 보이는 몇 명 조차도 손발이 떨리기에 충분했다. 잠시 화면을 꺼놓고 심호흡을 여러 차례 했다. 외운 대로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나에게 주문 걸었다. 그동안 노력했으니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을 거라 응원했다. 뛰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화면을 켰다. 시작해도 좋다는 사회자의 사인을 받고 준비한 PPT 화면을 공유했다. 첫 페이지를 화면에 띄우고 외웠던 아이스브레이킹 이야기를 꺼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정전이 된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마에는 이미 땀이 났다. 표정은 굳었다. 머리를 빠르게 돌렸지만 그 순간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기껏 외운 대본이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시작 후 몇 분 동안 버벅거렸다. 적었던 내용을 겨우 떠올렸고 중간중간 실수를 반복하며 근근이 끝낼 수 있었다. 마음이 넓은 청중만 모였던 탓에 많은 응원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강연이 끝나고 생각해 봤다.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정작 실전에서 그런 실수를 했는지를. 그 뒤로도 몇 번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준비하는 과정은 비슷했다. 정해진 주제에 맞게 PPT를 준비하고 사례와 경험을 글로 적어 대본을 만들었다. 대본과 화면을 맞춰보며 연습했다. 그렇게 연습해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시작부터 버벅거렸고 실수도 잦았다.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말에 답이 있었다.


나는 운전을 제법 한다. 24살부터 운전을 시작했고 도로에서 다른 차와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24년 무사고 운전자다. 나는 평균 이상의 운전 실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미국에서 자신의 운전 실력이 어느 정도 평균에 속하는지 물었고 응답자 중 93퍼센트가 평균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들이 그런 평가를 내린 데는 '유창성 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때 과정이 수월하게 그려지면 우리도 모르게 과신에 빠져든다. '이쯤이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유창성 효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안에 파고든다.

《씽킹 101》 안우경


내가 강연을 준비할 때도 '유창성 효과'에 빠졌기 때문이다. 연습을 했지만 방법이 틀렸다. 대본을 외운 건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행위다. 기억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이 붙었다. 써 놓은 대본이 외워질수록 실제 강연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착각에 빠졌던 거다. 그러다 실제로 청중과 마주하니 연습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 실전 같은 연습이 없었던 탓이다.


테드 강연 한 번에 18분이 주어진다. 대본으로 치면 6장 분량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테드의 강연 지침에는 1분에 최소한 1시간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정해놓았다. 즉 18분 발표하려면 최소 18시간 동안 실전 같은 리허설을 해야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유창성 효과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뿐이다. 강연을 준비한다면 실전처럼 말을 내뱉으며 반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연을 한다고 가정하고 똑같이 반복 연습하는 게 실전에서도 실수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글쓰기에도 '유창성 효과'가 작용한다. 남이 써놓은 글이나 책을 읽으면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읽고 나서 막상 써보면 생각만큼 써지지 않는 걸 경험하게 된다. 몇 번 시도해도 생각만큼 써지지 않는다. 그러다 글재주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하고 포기하고 만다. 앞서 적었듯 강연을 잘하기 위해서는 실전처럼 연습하는 게 해결 방법이라고 했다. A4 한 장을 그럴듯하게 채우려면 같은 종이에 100번 이상 써보는 거다. 글쓰기도 실전처럼 반복해서 써보는 게 잘 쓰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매일 반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매일 쓰는 시간을 정해놓는다.

하루 중 글 쓰는 시간을 정해놓는 것이다. 일어나 바로 쓰거나, 점심 먹고 잠깐 쓰거나, 잠들기 전 몇 줄 쓴다고 정한다. 내용이나 분량을 정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된다. 일단 일정한 시간에 쓴다는 습관을 갖는 게 중요하다.


둘째, 일상에서 소재를 찾고 메모해 둔다.

관심이 가야 자세히 보인다고 했다. 글을 쓰려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촉을 세울 필요 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감이 풍부해질수록 더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말이다.


셋째, 생각의 크기를 키우는 인풋을 한다.

쉽게 말해 독서이다. 책을 읽으면 다양한 관심사로 생각을 넓힐 수 있다. 관심사가 넓어지면 생각의 크기도 커진다. 생각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진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내는 게 글쓰기이다. 또 글로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효과도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는 것이다.


'유창성 효과'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전 같은 연습이라고 했다. 연습을 실전처럼 반복하면 발표든 글쓰기든 실력이 나아질 수밖에 없다. 무언가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시작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잘 하든 못 하든 결과는 나중 문제다. 일단 어설퍼도 시작하고 반복하면 실력은 나아지게 되어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이 글을 읽고 난 뒤 곧바로 한 편 써보는 거다. 그게 시작이다. 그리고 계속 반복하면 된다. 언제까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쓰면 쓸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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