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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7. 2023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부탁을 하든 말 꺼내는 게 쉽지 않다. 특히 자주 연락하지 않았던 사이라면 더 그렇다. 어쩌다 연락해 부탁만 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물론 상대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부탁하느냐도 먼저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부탁받는 이가 곤란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지 않으려면 평소 친분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언제 어떤 도움을 주고받을지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


하룻밤을 꼬박 망설였다. 1년 만에 전화하는 것도 어색했지만, 더군다나 부탁할 일이 있었다. 온갖 생각에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거절하면 어떡하지? 전화를 안 받으면? 해준다고 할 때까지 매달려야 하나? 매달린다고 들어줄까? 매달릴 용기나 있나?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안 될 이유만 찾고 있었다. 부탁은 거절을 전제로 하고 있다.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 부탁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이라면 자주 연락하며 친분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 같다. 노력 없이 만들어지는 관계는 없을 테니까.


생각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YES'든 'NO'든 답을 들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전화기를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고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자 상대방이 받았다. 첫마디에 상대방 얼굴에 미소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고 이게 얼마 만입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죠?"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순간 경계태세가 허물어졌다. 나도 목소리를 한 톤 높여 안부를 되물었다.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통화 전 걱정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날아가 버렸다.


반가운 소식과 함께 부탁할 용건을 꺼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꺼이 해드려야죠. 필요한 내용 정리해 보내주세요. 제가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2분 남짓 이어진 대화에 어색함은 없었다. 5년 전 처음 만났고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했었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늘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걸 나누는 일상을 사는 분이었다. 그만큼 그분이 가진 영향력도 크다. 그만한 영향력이 저절로 생긴 게 아니었다. 5년 동안 지켜본 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는 자신을 찾는 이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아낌없이 나눈다. 특별히 모나거나 부정적이지 않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그리고 변화와 성장을 바라면 기꺼이 방법을 알려주고 함께해 준다. 그런 마음과 태도 덕분에 나도 이제까지 변화와 성장을 지속해 올 수 있는 바탕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는 은인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기만의 규율 안에서 원칙을 지켰다. 그의 일상은 변화와 성장을 바라는 이들에겐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태도가 그만의 영향력을 갖게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건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책임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어진다고 했다. 수만 명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마음의 그릇도 큰 거라 믿는다.


부탁하기 전 상대의 반응을 걱정했던 나를 돌아봤다. 내 기준에서 상대의 반응을 미리 짐작했다. 내가 했던 걱정이 내 마음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거절을 걱정했던 건 부탁받는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정작 상대방은 아무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응해주었다. 1년 만에 연락이 와도, 쉽지 않은 부탁에도 어떤 조건 없이 흔쾌히 받아주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개 어떤 이유도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그를 잃지 않도록."

여기에서 말하는 돈은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내게 이유 없이 마음과 시간, 그리고 순결한 믿음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김종원


이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나에게 마음과 시간을 내주었다. 고마운 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봤다. 살가운 성격이 못돼 자주 연락하는 건 못한다. 대신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에게 배운 대로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조건 없이 마음과 시간, 그리고 순결한 믿음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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