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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9. 2023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운다


고시원 사업을 배워보려고 강의를 들었다. 오랜만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중이다. 강의를 들으면 자연히 사람과 연결된다. 같은 관심사로 모이는 사람들이다. 저마다 스토리를 갖고 한 곳에 모였다. 강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람과 연결되는 것 또한 가치를 따질 수 없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6살에 독립을 했다. 아는 형이 운영하던 고시원에서 시작했다. 20만 원짜리 방이었다. 1인용 침대 두 개가 놓인 만큼의 크기였다. 가구는 침대와 책상, 옷장이 전부였다. 불을 끄면 손바닥도 보이지 않았다. 방에만 있으면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화장실, 샤워실, 주방과 세탁기를 40명이 함께 사용했었다. 그 안에서 사생활은 없었다. 10센티미터 두께의 석고보드 벽은 소음을 막아주지 못했다. 옆방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소리로 전해졌다. 그런 탓에 알 수 없는 친밀감이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는 척을 한다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었다. 서로에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1년 남짓 동안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만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갈 뿐이었다. 사람과 살았지만 사람과 어울리지는 못했다.


사교성이 부족한 탓에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모임에 나가는 건 피곤한 일이었다.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만으로 충분했다. 곁을 내어주는 사람은 오래 알고 지낸 이들이 전부였다. 직장을 여러 곳 옮겼어도 친분을 쌓은 사람은 소수였다. 결이 맞는 사람을 골라 만났다. 상대방도 이런 내 태도를 짐작했는지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은 지켰지만, 굳이 더 만들 만큼 에너지 있지는 않았다. 만나는 사람이 많은 게 부럽기도 했지만 부럽다고 따라 할 만큼 열정은 없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게 사람이었다.


6년 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책으로 만나는 저자의 삶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시간 낭비하는 내가 보였다. 목표 없이 사는 내가 보였다. 의지도 끈기도 없는 내가 보였다. 아이에게 화만 내는 불친절한 내가 보였다. 아내와 소통하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내가 보였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가 보였다.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보였다. 말수가 적은 건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라고 알려줬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노력하는 모습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의 장단점을 그들의 삶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통한 만남이 많아질수록 점차 변화할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을 통해 나도 달라질 수 있었다.


책을 통해 달라지면서 직접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같은 강의를 들으며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났다. 같은 목표를 갖고 같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다. 함께 하는 것 자체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진 이들에게서 끝까지 해내는 힘을 얻었다.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에서 또 다른 관점을 배웠다. 함께하면서 자연스레 배우고 의지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사람은 사람을 도울 때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히 사람 속으로 들어갔다. 첫 만남부터 살갑게 대할 만큼 소탈한 성격은 아직이다. 대신 적어도 밀어내거나 싫은 티 내지는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도움이 되고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데 계산기 두드리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든 내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돕는 게 당연한 거라 배웠다. 나도 책을 쓴 수많은 저자 덕분 이렇게 변했으니 말이다.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누구든 언제든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거다. 그래야 사람 사이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대단한 걸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삶을 뒤흔들어놓을 만큼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을 다할 뿐이다. 그동안 경험했던 걸 나누는 이런 글을 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말로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삶에 실금이라도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나도 그 실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고, 사람 사이에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할 것도 계산도 필요치 않다. 어쩌면 내가 좋아서 먼저 다가서고 가진 걸 나누면 돌고 돌아 결국엔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믿는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드러난다."

-새뮤얼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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