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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04. 2023

놈이 또 나타났다


어쩌다 한 번씩 고개를 쳐든다.


사는 게 순탄하지 않지만 최악은 아니다.

6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자리를 잡기 위해 매일 애쓰는 중이다.

원하는 일이지만 생각만큼 수월하지는 않다.

감수하고 각오했던 상황이다.


버티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버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다.

버티지 못하면 그동안 쌓아온 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사람일 한 치 앞을 모른다.


스스로 다독이며 포기가 아닌 희망으로 무게 추를 기울인다.

한쪽으로 기운 무게 추는 언제든 원래대로 균형을 맞추게 된다.

기대가 기대로 끝나면 저울은 다시 수평을 이룬다.

수평을 이루지만 언제든 포기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마음먹기 나름이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이놈에게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삽시간 살을 찌운 이놈은 무게 추를 반대로 기울인다.

먹이를 주지 않아도 어느 때가 되면 스스로 몸을 불린다.

눈 깜짝할 사이 늘어난 무게에 저울이 위태로워 보인다.


희망과 달리 이놈에게 기운 무게 추를 다시 되돌리는 데 더 힘이 든다.

늘 마음 한편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사라질 수도 사라져서도 안 된다.


이놈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자기 성장에 도움을 받는다.

변화와 성장에 이 놈만 할 게 없다.

어쩌면 변화와 성장을 시작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바닥까지 떨어졌다면 이놈의 도움을 받아 다시 딛고 서기도 한다.


그러니 이놈을 통제하고 지우는 게 애초에 불가능할 수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으니 말이다.


6년 동안 치고받았으며 이제 스스로 다룰 때도 됐다.

여전히 휘둘린다면 아직 수행이 덜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평정심을 위협하는 놈들은 다양하다.

아마 그놈들 중 이놈이 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적어도 지금 나에게는 그렇다.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이놈을 눌러왔다.

사라지지 않으니 동거할 수밖에 없다.

함께 살려면 규칙을 만들고 따라야 했다.

내가 만든 규칙은 간단했다.

무시하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몸집이 커질 때는 규칙도 소용없다.

무시해 보지만 무시하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자라 있다.

지금 또 한 번 시험에 들고 있다.

이번에도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지고 싶지 않다.

져서도 안 된다.

6년이다.

6년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세월이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실체가 없는 이놈을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글로 쓰는 것이다.

글로 쓰면서 어떤 감정인지, 무엇 때문에 힘이 든 지 들여다본다.

실체를 마주하면 해결 방법도 보이기 마련이다.

뜬구름은 잡으려고 해도 안 잡힌다.

이렇게 글로 실체를 드러내면 손에 잡힌다.

손으로 잡아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던져버린다.

이 글과 함께 다시 돌아오기 먼 곳으로 힘껏 던져버린다.


잘 가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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