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아내는 욕실에서 둘째를 씻겼다. 씻고 나온 둘째에게 아내는 머리를 말리기 전 숙제를 끝내라고 했나 보다. 둘째는 내 머리맡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잠결에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둘째가 이유도 없이 운다며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그 소리에 나도 깼다. 얼굴을 돌려보니 고개를 푹 숙인 둘째가 보였다. 정말로 울고 있었다. 나도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우는 목소리로 아빠의 흰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한다. 아빠가 자기 때문에 고생해 흰머리가 많이 났단다. 그러더니 더 서럽게 운다. 아내도 나도 당황했다. 그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빠는 고생과 상관없이 원래 흰머리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농담을 섞어 여러 번 설명했다. 그러자 우는 걸 그쳤다. 둘째는 정도 많고 감수성도 예민하고 공감도 잘한다. 그런 탓에 아빠의 흰 머리카락에 감정이입을 했던 모양이다. 나도 우리 엄마 아들인데 이제껏 그런 공감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장모님이 육아를 맡아주었다. 8년을 함께 살았다. 장모님은 때마다 염색에 파마를 했다. 파마한 머리는 파마 전보다 조금 더 곱슬거렸다. 염색한 머리는 염색 전보다 조금 더 까맸다. 아마도 살가운 성격이 아니어서 자세히 보지 않았던 건 같다. 엄마도 수십 년째 염색을 했다. 장모님처럼 풀리지 않는 파마머리를 했고 흰머리가 보일 때면 주저 없이 염색했다. 한 집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염색 한 번 해준 적 없었다. 때가 되면 염색하고 파마하나 보다 싶었다. 염색과 파마가 당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새치가 올라왔다. 놔두면 백발이 될 정도로 많이 났다. 흰머리가 많아질수록 나이 들어 보인다고 주변에서 말했다. 40대가 40대처럼 보이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염색을 시작했다. 흰머리를 가려 제 나이처럼 보이고 싶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새치 나는 속도도 빨라졌다. 나이 들면서 몸의 기능은 떨어져도 머리카락이 더디게 자라지는 않는가 보다. 느낌일 수 있지만 염색을 시작하고부터 새치 양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러니 염색을 습관처럼 하는 중이다.
두 딸을 키우면서 자연히 외모에도 신경을 쓴다. 함께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은 꾸미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내도 그러길 바라서 옷도 사 입히고 염색도 해준다. 가족을 책임지는 건 여러 면 이 있다. 생계를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올바로 자랄 수 있게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내면의 성장도 필요하지만 외모도 중요하다. 단순히 보이는 겉모습이 아닌 건강한 외모를 유지해야 할 의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모습에서 아이도 부모를 신뢰하고 스스로도 노력할 테니 말이다.
나이 들어 보이지 않으려고 염색을 한다. 제 나이로 보여야 건강해 보인다. 건강해 보여야 활기 있어 보인다. 나이 들수록 꾸미지 않으면 초라해 보인다. 아이들에게도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믿음을 줄 수 있다. 또 이왕이면 젊어 보이는 아빠를 원할 수도 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철이 없었던 때는 후줄근한 모습의 엄마와 아빠가 창피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왕이면 잘 꾸민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당신들이라고 꾸미고 싶지 않았을까. 고단한 삶에 염색, 파마는 사치였을 수도 있다. 그럴 돈과 시간을 자식에게 쓰는 걸 더 가치 있다고 여겼을 테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모님은 당신의 건재함을 염색과 파마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동네 미장원에서 2만 원 주고 한 파마는 1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아서 한결같은 외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집에서 7천 원짜리 염색약으로 신문 깔고 비닐을 뒤집어쓰고 직접 해 보이며 당당함을 보여줬다. 나이 드는 건 막을 수 없지만 나이 들어 보이는 건 막을 수 있었을 테다. 그런 노력은 당신들이 건재하다는 걸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둘째가 걱정하지 않게 내가 젊어 보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둘째에게 염색을 부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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