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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4. 2023

만나면 좋은 친구


"말해봤어? 못 했구나? 그럴 줄 알았어."

아내의 질문에 얼버무리고 말았다. 말할 때를 놓쳤다. 홍대표와 대화는 세 시간 동안 물 흐르듯 이어졌다. 오랜만에 터진 입이라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았다. 공동의 관심사로 진지하게 대화해 본 게 오랜만이었다. 10년째 이어진 인연이었고 서로를 잘 아는 터라 애정도 남달랐다. 서로에게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이겨낸 동지나 다름없다. 그러니 돈 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애가 탄다고 했다. 수년 전 투자를 위해 빌려준 돈이었다. 홍대표도 사정이 생겨 돌려주지 못하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적지 않은 돈이라 한 번에 해결하는 게 만만치 않을 터였다. 아내의 바람대로 해주지 못했지만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다.


10년 전 같은 직장을 다녔다. 1년 넘게 월급을 못 받고 다녔다. 구청 구내식당 4,000원짜리 밥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버텼다. 공인중개사 시험도 함께 준비했다. 합격하면 부동산으로 전업할 각오였다. 나는 떨어졌고, 그때 홍대리는 지금은 어엿한 공인 중개사무소 대표가 되었다. 힘들고 어렵고 좋았고 즐거웠던 순간을 함께해 왔다. 혼자였으면 버티지 못했을 시기를 둘이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서로에게 애정도 남달랐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하는 일이 잘 되길 마음으로 늘 빌어주고 있다.


나는 6년 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직장은 물론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그때 유일하게 말한 게 홍대표였다. 내가 책 읽는 모습을 여러 해 두고 봤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 자신도 책을 읽는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가끔 물어왔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게 더없이 기뻤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한단다. 그게 새로운 즐거움이라고 했다. 밝은 표정으로 책 읽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할 땐 마음이 뿌듯했다. 책 읽으라고 잔소리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나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덕분에 공동의 관심사를 갖게 되었다.


술 대신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술을 끊었지만 홍대표는 줄였다고 한다. 사업을 하니 끊지는 못하겠단다. 대신 맑은 정신과 건강을 위해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자연히 건강을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조승우 한약사의 책을 읽었고 몇 가지를 실천 중이라고 했다. 홍대표가 실천 중인 걸 나는 3년째 해오고 있다. 같은 몸무게를 유지해오고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또 홍대표는 커피 끊은 지 3주째라고 했다. 이 책에서 커피에 대한 내용을 읽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나도 그 책을 읽고 커피를 줄이는 중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줬다. 밥을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오갔다.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겼다. 메뉴판에는 색색깔의 다양한 음료 사진이 보였다. 커피나 과일음료 대신 차(TEA)를 마시자고 했다. 예전에는 달달한 음료를 마셨을 홍대표다. 그사이 생각이 많이 달라졌는지 흔쾌히 내 말에 따랐다. 캐머마일을 사이에 두고 다시 대화가 이어졌다.


오래전부터 주식을 공부했단다. 최근 들어 관련 서적 수십 권을 읽으며 나름의 투자방법을 실천 중이라고 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원칙 없이 투자하는 사람이 실패한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대부분 빨리 쉽게 돈 벌 목적으로 묻지 마 투자를 한다. 스스로 아무런 검증 없이 남의 말을 믿고 하는 투자다. 그런 투자가 잘 될 리 없다. 대부분 결말이 안 좋다. 홍대표도 나도 투자를 하려면 공부가 먼저라고 했다. 어떤 투자든 남의 말이 아닌 스스로 하는 선택이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려면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 공부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남 탓하지는 않는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공부하는 거다. 한 단계씩 밟으며 자기만의 투자 원칙을 세우고 바라는 만큼의 성공도 이루게 된다. 홍대표도 나도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며 근사하게 성공하길 바랐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오고 갔다. 아마도 책을 읽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책 읽기 전에는 그저 즉흥적이고 자극적이고 뜬구름 잡는 대화만 오갔다. 세월이 흘렀고 생각이 변하고 공부한 탓에 하나라도 남는 대화로 이어졌다. 나이 들수록 나누며 살라고 했다. 나눌수록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대단한 걸 나누는 게 아니다. 살면서 배우고 공부한 걸 나누는 게 전부다. 살면서 얻는 지혜다. 단 몇 분을 대화해도 배울 게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 있다. 나이와는 상관없을 터다. 어쩌면 그런 매력은 나이 들수록 더 진해지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서로에게 자극 주고 영향을 주며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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