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맹렬해지기 전인 6시 반에 달렸다. 그래도 2킬로미터를 통과하면서 이미 땀에 젖었다. 땀이 많이 나고 볕이 뜨거워질수록 달리는 게 힘들었다. 절반도 못 달렸을 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호흡이 거칠어져도 두 발을 멈출 수 없었다. 8.15킬로미터 완주가 목표였다. 남들에게 따라 잡혀도 내 속도를 지켰다. 힘이 부쳐 속도가 느려져도 걷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꾸역꾸역 달렸다. 달려야 할 거리가 줄어들수록 다리에 힘이 붙었다. 숨을 가다듬고 남은 힘을 짜냈다. 호흡은 이미 거칠어졌지만 죽지는 않는다. 결국 목표했던 8.15킬로미터를 완주했다. 달리면서 생각해 봤다. 글쓰기와 달리기의 공통점을.
달리기는 출발선, 글쓰기는 첫 문장부터 시작한다. 달리기는 결승선을 통과하면 끝이 나고, 글쓰기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야 끝이 난다. 누구나 출발선에 설 수 있고 첫 문장은 적을 수 있다. 첫 문장 쓰는 게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첫 문장이 어려울 때는 날 것의 초고를 수정할 때다. 초고를 쓸 때는 첫 문장은 일단 아무 말이 쓰고 보는 게 상책이다. 괜한 힘 뺄 필요 없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출발선에 서는 것도 격식을 갖추거나 비장한 각오가 필요치 않다. 운동화에 편한 옷을 입고 나서면 그걸로 충분하다.
출발선, 첫 문장에서 시작한다고 모두가 결승선, 마침표를 찍는 건 아니다. 시작은 쉬울 수 있지만 끝내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 체력이 달리고 호흡이 부치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글도 쓰다 보면 생각처럼 안 써져 포기하기도 한다. 결승선과 마침표를 찍는 사람은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고 써내는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마라톤을 달리고 소설을 써낼 필요는 없다. 내 몸 상태에 맞게 운동장 한 바퀴부터, 몇 줄 쓰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달리기를 하면서 음악은 들을 수 있지만 유튜브를 볼 수는 없다. 글을 쓰면서 음악은 들을 수 있지만 상대방과 대화할 수는 없다. 간혹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글쎄다. 달릴 때는 달리기에만 집중해야 완주할 수 있다. 글도 쓰는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다. 생각이 곁가지로 빠지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코스를 이탈할 수도 있다. 글 쓰다가 잡생각이 들면 맥락이 안 맞거나 주제가 없는 글이 될 수도 있다.
과정 없는 결과 없다고 했다. 결승선에 도착하려면 중간 코스를 오롯이 통과해야 한다. 중간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건 구급차를 타고 가는 방법뿐이다. 허리가 잘린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서두와 결말만 있는 글은 설득도 안 되고 주장도 할 수 없다. 허리가 탄탄한 글이 대중을 사로잡고 독자에게 사랑받는 게 당연하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 있다. 기분만 믿고 신나게 달린다. 기분에 취해 달리다 보면 얼마 못 가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또 나를 따라잡는 사람에게 승부욕이 발동해 속력을 높인다. 그래봐야 얼마 못 가 지치고 만다. 괜한 승부욕에 체력을 낭비했다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만다. 글쓰기는 달리기처럼 속도를 측정하는 경기가 아니다. 남들이 하루에 몇 편을 써낸다고 나도 따라서 써내야 할 필요 없다. 체력이 좋아지면 잘 달리는 것처럼 글도 꾸준히 쓰다 보면 잘 써지는 법이다. 그러니 과욕만 앞서 많이 쓰기보다 내 실력에 맞게 시간이 걸려도 한 편에 정성을 들이는 노력이 먼저이다.
달릴 때 달리기에만 집중해야 완주할 수 있다. 글을 쓸 때도 글에만 집중해야 완성할 수 있다. 시작해야 끝이 있고, 과정에 충실했을 때 원하는 결과를 얻는 법이다. 결과만 바라고 과정을 건너뛰면 원하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 발 한 발에 정신을 집중하듯,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다했을 때 결승선에 도착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달리다 보면 분명 힘이 든 순간이 찾아온다. 글을 쓰다 보면 분명 생각이 막히는 때가 있다. 힘이 들 때 한 발 더 내딛고, 생각이 막힐 때 한 번 더 고민하는 사람에게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생각이 안 난다고 멈추면 다음 기회는 없다.
글을 써야 할 시간에 달리기를 하러 갔다. 목표했던 거리를 완주하고 씻고 나와 다시 카페에 자리 잡았다. 빈 화면과 대치한 지 30여 분 만에 첫 문장을 썼다.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았지만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고 손가락이 느려져도 끝까지 쓸 각오를 다졌다. 한 글자씩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여기까지 써내려 왔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도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완성했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멈추지만 않으면 결승선을 통과하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된다. 장하다! 김 작가.
"러너는 주머니에 돈을 채우고 뛰기보다는, 머리에 꿈을 새기고 가슴에 희망을 품고 달려야 한다."
-에밀 자토펙-
https://docs.google.com/forms/d/1SoD-_ZaM9Al1vV9lrJnNVbJbkbqY7ST4miCwpfMKYk4/ed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