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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11. 2023

징징거리지 말고 차라리 글을 써라

살다 보면 이런 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학생 때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군인일 때는 당장이라도 제대하고 싶었습니다.

직장인으로 사는 지금은 출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빠와 남편의 역할도 내려놓고 싶습니다.

며칠 동안 의무는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습니다.


마음과 달리 몸은,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들고 도시락을 챙깁니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정해진 일과를 보냅니다.

어느새 옷을 챙겨 입고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아내가 시키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봅니다.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늘 있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이 기대했던 것만큼 안 나왔을 때.

당연할 줄 알았던 승진에서 미끄러졌을 때.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헛빵으로 끝났을 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을 때 상실감이 듭니다. 


상실감에 한 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이 듭니다.

술로 위로해 보지만 마시는 그때뿐입니다.

마음 다잡으려고 애써보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해보지만 듣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보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돌아갑니다.

극약 처방이 필요하지만 극락으로 떨어질까 겁부터 납니다.


그렇다고 무한정 빠져 살 수도 없습니다.

내 마음은 시궁창이지만 세상은 아무 일 없듯 돌아갑니다.

아무리 티 내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징징거리지 말라고 타박이나 받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넵니다.

그 말이 섭섭하기도 하지만, 사실임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인생사 결국 독고다이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방법도 알아서 찾아야 합니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씩씩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은 어떤 순간에도 남일뿐입니다.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손을 놓고 싶었지만 놓아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듯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징징거려도 누가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괜히 뻘쭘했습니다.

다들 비슷한 일을 겪지만 알아서 헤쳐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만 유난 떨려고 이 글을 씁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내 안에서 해결하는 걸로.

드러내봐야 남의 에너지만 빼앗을 뿐입니다.

스스로 극복해야 면역이 생깁니다.

다음에 같은 일을 당해도 조금은 쉽게 털어낼 수 있을 겁니다.

더 크고 센 놈에게 당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자책하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극복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극복해야 합니다.

내일도 변함없이 해가 뜬다는 걸 누구나 압니다.

삶도 아무 일 없듯 흘러갈 겁니다.

어제의 실수를 붙잡고 있어도 시간은 갑니다.

붙잡고 있어 봐야 내 손만 아픕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글은 매일 썼습니다.

요상한 내용을 쓰더라도 그냥 썼습니다.

이것마저 손에서 놓으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지푸라기가 아니라 동아줄이었습니다. 


이놈의 글이 저를 꽁꽁 싸맨 동아줄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적당히 휘둘리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마 이번 일로 조금 더 굵어진 것 같습니다.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실패의 경험이 쌓일수록 더 단단해진다고 했습니다.

밧줄이 굵어질수록 견디는 힘도 더 탄탄해질 겁니다.


때로는 징징거려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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