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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12. 2023

꿈 많았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나요?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최진주 《나와 잘 지내고 있나요?》 본문 중)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 꿈이 무엇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절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

무언가에 몰입도 열정도 불태운 적 없었다.

간절했다면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했을 거다.

그랬던 기억이 없다.

어쩌면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

살다 보니 잊힌 것일 수도 있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의 나다.

그 아이가 꾸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왜일까?

꿈과 현실 중 현실을 택해서일까?

꿈대신 지루한 일상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 이만큼 살 수 있게 되었나?

꿈을 간직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았다면 어땠을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때 나를 떠올리니 온통 질문뿐이다.

의문만 남았다는 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맞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살아내기 위해 살았던 삶이다.


꿈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꿈은 있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매달리지 않았다.

어쩌면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부모 찬스부터 시작한다.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은 나에게까지 기회가 오지 않았다.

기회가 오지 않았고 포기했다.

다른 방법을 몰랐을 수도, 열정이 없었을 수도 있다.

결국 꿈보다는 현실을 따랐다.


현실감 덕분에 남들만큼은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가정을 꾸리고 살 만큼의 월급을 받는다.

월급은 아이들을 꿈꾸게 돕는다.

적어도 내가 갖지 못했던 꿈을 아이들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꿈을 찾는 큰딸, 꿈이 분명한 둘째.

원하는 전부를 해줄 수 없지만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다.


내가 갖지 못했던 꿈을 아이들은 가졌으면 좋겠다.

어떤 꿈이든 상관없다.

스스로 찾아서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

늘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현실보다 이상을 좇았으면 한다.

나처럼 후회 남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란다.


이제 나도 꿈을 꾸고 있다.

어릴 때 꾸었던 꿈과는 다르다.

지극히 현실적인 꿈이기도 하다.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이상만 좇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현실적이면 어떤가, 적어도 꿈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꿈이 없을 줄 알았던 나도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이 없었다면 지난 6년을 버티지 못했을 것 같다.

꿈을 꾸었기에 내일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매일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중이다.

매일 쓰는 삶을 꿈꾸었고 오늘도 이렇게 꿈을 이루고 있다.


나에게 글은 꿈을 이루는 도구이다. 

글을 썼기에 작가의 꿈도 이루었다.

글을 썼기에 과거와 다른 아빠가 되었다.

글을 썼기에 하고 싶은 일도 찾았다.

글을 썼기에 오늘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글을 썼기에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아직 내 안에 있었다.

다른 꿈을 꾸면서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꿈이 없었던 삶도 살아봤고,

꿈을 가진 삶도 사는 중이다.

어떤 꿈을 갖는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언제까지 꿈을 꿀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도 꿈을 꾸고 있다.

육십, 칠십을 바라보는 누군가도 꿈을 꾸고 있다.

가장 불행한 건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이다.


어릴 적 꿈으로 가득 찼던 그 아이는 어디 있나요?

여전히 함께 있나요?

아니면 잊혔나요?

그 아이는 당신이 손잡아주길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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