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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09. 2023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글쓰기 효과


큰딸이 세븐틴을 좋아하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다. 퇴근길 강변북로가 막히는 건 내 의지와 상관없다. 아내가 저녁 반찬으로 김치찜을 만드는 것도 내 선택이 아니다. 내 주변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고 들 때 충돌이 발생한다. 충돌을 피하는 방법은 통제할 수 없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을 통제하려는 건 요즘 같은 폭염에 함박눈이 내리길 바라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애쓰는 사람, 자포자기하는 사람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중 어떤 선택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판단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했을 테니 말이다. 내 생각과 다른 판단을 했다고 비난할 이유 없다. 틀렸다고 바로잡을 필요도 없다. 그들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 주면 그만이다. 내 선택 또한 타인의 눈에는 올바른 판단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내 가치관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누구의 허락을 필요로 하거나 정답을 확인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 찾고 선택한 방법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통제할 수 없는 일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찾은 방법은 글로 써보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에게 일어난 상황을 한발 물러나 바라볼 수 있다. 상황을 객관화하는 단계이다. 사실과 감정을 분리시키는 과정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건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일로 인해 자괴감, 열등감, 우울감 등 부정적 감정이 일어난다. 이런 감정을 그대로 놔두면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한 경우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어쩌다 한 번이면 극복하고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언제 어느 때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감정에 덜 영향을 받게 자기만의 방법을 갖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글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다. 감정은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감정을 글로 적으면 눈에 나타난다. 눈으로 볼 수 있으면 다음 단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내 감정이 열등감이라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다. 대상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한다.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열등감은 점점 더 커진다. 스스로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꼴이다. 그래서 글로 쓰면서 내 감정을 종이 위에 꺼내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감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원망도 했다. 내 탓도 했다. 아무리 그런들 일어난 일이 없던 게 되지는 않는다. 알면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난 5개월 동안 의심이 달려왔다. 매달 정성껏 강의안을 만들고 시간을 쪼개 연습했던 노력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애쓴 시간이었는지 의심도 들었다. 생각과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중요한 건 그런들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수강생이 한 명도 오지 않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을 터였다. 나는 나대로 한 명이라도 더 모르기 위해 매일 애썼다. 운이 안 통했고 노력이 부족했을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은 지하 100미터를 뚫고 내려갔다. 이대로 두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글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도 외면하고 싶었다. 외면하고 쓰지 않았을 때 일어날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더 큰 상실과 후회가 들 것 같았다. 그래서 키보드를 끌어놓고 쓰기 시작했다.


이만큼 써내려 오는 동안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어제 일어난 일은 분명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인정하자. 그다음 행동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 후회가 안 남을 선택을 해야 한다. 억지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내 감정을 인정하고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쓰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물론 어쩌다 불쑥 같은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 감정도 내 선택일 뿐이다. 인정해 주고 다시 마음을 다독이면 된다. 필요하면 글을 쓰면서 말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강요받는다.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지금의 나는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물이다. 우울감에 글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더 큰 우울감이 드는 것도 내 선택의 결과다. 반대로 글쓰기를 선택했고 우울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것 또한 내 선택이었다. 이 둘 중 나에게 필요한 건 후자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더 가치 있다. 더 가치 있는 걸 선택할 때 태도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다. 삶을 조금 더 잘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때 인생도 더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사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선택이 필요한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뿐이다. 의지가 약해서일 수 있다.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몰라서 일 수 있다. 선택의 결과가 두려워서 일 수 있다. 하지만 살던 대로 살면서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렵고 힘들고 불편해도 한 번은 부딪쳐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끌려가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면 성취감이 든다. 성취감은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든다. 이런 긍정의 태도가 삶에는 더 필요할 것이다.


수강생 '0'은 어제 일어난 일이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어제를 돌아봤고 앞으로 태도를 선택했다. 선택은 단순하다.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쓴다. 쓰는 것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통제할 수 있는 걸 선택했기에 오늘도 성취하며 시작한다. 성취감 덕분에 기분이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우울감에서도 조금씩 벗어나는 중이다. 글쓰기 효과, 이만하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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