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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ug 16. 2023

시련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에 무너진다

30대 중반, 직장을 구하지 못해 3개월 동안 허송세월을 보냈었다. 대책도 없이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왔다. 대책이 있었다면 아마도 뛰쳐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했다. 성질을 부린 탓에 나는 물론 가족에게도 피해를 줬다.

직장은 금방 구해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나를 찾는 곳은 없었다. 장문의 자기소개서를 보내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입사지원서를 써도 면접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채용 조건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를 채용 조건에 억지로 끼워 맞췄다. 입사지원을 남발했다. 그만큼 절박해졌다. 마음의 여유도 잃었다. 나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나는 그럴만한 역량을 가졌나? 그동안 낭비했던 시간이 후회됐다. 후회는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왔다.

3개월 만에 직장을 구했다. 내가 원하기보다 나를 원한 곳이었다. 원하는 조건도 아니었다. 조건에 나를 맞췄기에 얻은 직장이었다. 어떤 회사인지 따질 여유가 없었다. 월급을 받는다는 게 중요했다. 급하게 먹는 떡이 체하듯 급하게 선택한 직장도 오래가지 못했다. 몇 달 만에 다시 실직자가 되었다.


시련은 늘 따라다녔다. 크기와 종류는 달랐어도 매 순간 나를 시험에 들었다. 어떤 시련은 쉽게 극복되었다. 또 어떤 시련에는 겁을 먹고 도망쳤다. 시련을 이겨냈을 땐 내가 조금 성장한 것 같았다. 겁먹고 회피한 시련은 나를 주눅 들게 했고 나의 가치를 의심케 했다. 극복하지 못했던 시련은 대개 할 수 없다는 생각 뒤로 숨었었다. 해도 안 될 거라는 의심부터 했다. 나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이겨낼 용기는 자연히 작아졌다. 그리고 알았다. 시련을 대하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시련을 극복하는 출발선이었다는 걸.


마흔여덟, 여전히 시련과 나란히 걷는 중이다. 이제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온갖 시련은 다 겪은 줄 알았다. 직장에서의 경험이 시련으로부터 나를 단련시켰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상황이 바뀌면 그에 따른 시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퇴직을 준비하는 요즘, 직장을 다니면서 두 가지 일을 더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리 잡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이고 아직은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또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럴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어쩌면 대처할 역량이 부족해 더 시련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말이다.


요즘 겪는 시련이 이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이를 대하는 내 태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시련을 대하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미리부터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뒤로 숨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돌파구가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중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현실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는 불안과 걱정이라는 감정에 의해 조정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말은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지만 감정에 압도되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불안과 걱정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거기에 답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련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나에게는 별일 아닌 시련도 남에게는 인생이 뒤바뀔 만큼의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정해진 공식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한 듯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통된 한 가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시련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미리부터 겁을 먹고 숨어버리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어떤 결과를 갖게 될지는 나중 문제다. 우선은 주어진 시련에 당당하게 맞서보는 거다. 그리곤 자신만의 답을 찾는다. 설령 틀린 답을 찾았다고 해도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았다. 틀린 답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틀린 답을 찾은 경험이 쌓일수록 비슷한 시련이 또 왔을 때 보다 빨리 정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직장을 아홉 번이나 옮기며 시련을 자처했었다. 그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었다. 그러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고 선택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만, 이를 바꿀 역량이 나에게 없다고 변명했다. 핑계 뒤에 숨었었다. 요즘은 이직 문제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대신 퇴직을 준비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와 맞닥뜨리는 중이다. 할 수 있을까 의심도 든다. 이 길이 맞는지 다시 묻기도 한다. 선택이 틀린 게 아닌지 다시 생각하기도 한다. 의심과 고민은 되지만 숨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언제나 답은 내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다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 된다. 그렇게 오답을 하나씩 지우며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시련이 시련이 되는 건 도망치거나 마음이 무너졌을 때라고 생각한다. 시작도 안 해보고 나는 할 수 없다고 한계를 정할 때 시련도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스스로 시련에게 먹이 주는 꼴이다. 그러고는 스스로 잡아먹힌다. 시련의 크기는 상대적이라고 앞에서도 말했다.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저마다의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니 어떤 게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적어도 먼저 겁을 먹고 도망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부딪쳐보면 아무 일 아니게 넘어갈 수도 있고, 설령 어려움을 겪는다면 굳은살이 한 꺼풀 생겼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음번에는 보다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이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문제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한 나머지 용감히 맞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난과 도전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그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 때문에 무너진다."

《인생은 지름길이 없다》 스웨이





직장 노예 | 김형준 - 교보문고 (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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