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 있을 때도, 운전 중일 때도 안 오던 비가 현장에 도착하니 쏟아졌다. 우산을 써도 바지와 신발이 젖었다. 우산도 뚫을 기세로 몰아쳤다. 버스정류장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내리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오락가락 내렸다.
현장 점검을 마치고 구청에 갔다. 공사와 관련된 협의를 위해서다. 공무원은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그들에겐 당연한 게 나에게 당연하지 않다. 요구하는 것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다. 그러니 쉽게 쉽게 협의되는 일이 거의 없다. 어제는 그나마 순탄했다. 몇 마디로 원하는 걸 얻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른 퇴근길에 올랐다. 지도를 검색하니 일산까지 1시간 40분이 뜬다. 퇴근시간과 물리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의미이다. 방향을 틀었다. 예전 직장에서 연이 닿았던 작가 형님을 만나러 갔다. 그 형님도 직장을 다니면서 소설을 쓴다. 재능을 타고난 금수저부류다. 물론 일찍부터 책을 좋아해 셀 수 없이 많이 읽었다고 했다. 아마 그런 밑바탕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소설을 쓴다고 했다. 부러운 재능이다. 저녁으로 동태탕을 먹은 뒤 차 한 잔 마시며 3시간 남짓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새 책도 사인해 선물했다. 책을 낸 걸 동경해했다. 그 형님도 그만한 능력이 되지만 장르가 달라서 아직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장담컨대 조만간 세상에 이름을 알릴 그런 재능의 소유자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나도 동기부여를 세게 받았다. 물론 형님도 나의 노력이 자극이 된다고 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남는 것과 배울 게 많은 시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를 할 수 있다. 사람은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한다. 받는 게 있다면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거창한 것만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소한 대화 속에서 상대에게 자극을 주는 것도 돕는 것이다. 어제의 대화가 그랬다. 나를 통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는 형님의 말에서 알았다. 내가 잘 살면 남도 잘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어제 있었던 일과를 간단히 적었다. 시작하는 게 수월했다. 별 고민 없이 있었던 일을 나열했다.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메시지도 적었다. 일기처럼 쓴 글도 메시지를 담으면 에세이가 될 수 있다. 일기를 쓰는 데 고민하고 쥐어짜며 쓰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 동안 어제 일을 떠올려보고 시간 순서대로 적어 내려간다. 그러고 나서 나만의 메시지를 쓴다. 어쩌면 글 한 편을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작은 이 질문이다.
"어제 뭐 했니?"
글감을 찾는 가장 쉬운 질문이기도 하다. 매일 근사한 글만 쓸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나는 그럴만한 역량도 부족하다. 가끔은 살아가는 이야기도 쓰면서 여유를 갖는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충전이라고 할 수 있다. 편할 때 충전이 잘 되는 법이다. 글도 부담 없이 가벼운 주제를 쓸 때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스트레스받으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닐 테니 말이다. 하루하루 다른 일과를 보낸다. 같은 듯 다른 하루를 산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쓸 말이 많다. 대작을 쓰는 게 아니니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어쩌면 소소한 일상에서 얻는 메시지가 어떤 대작보다 더 울림을 줄 수도 있다. 내 삶에 관심을 갖고 산다면 말이다.
글 한 편 쉽게 쓰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정해진 규칙이 있는 건 아니다. 규칙도 방법도 내가 만들면 된다. 한 편씩 쓰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검증을 받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게 가장 최선이다. 남들이 쓰는 방법을 활용해 볼 수는 있어도 집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똑같은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 생김새가 다른만큼 방법도 다양할 뿐이다. 중요한 한 가지는, 연습하는 사람만이 다양한 방법의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연습하면 할수록 실력도 나아질 것이다. 나도 그렇게 믿고 매일 쓰는 중이다. 달릴수록 건강해지듯, 글도 쓸수록 나아진다. 그러니 계속 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