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개인 저서 《직장 노예》가 지난 8월 2일 세상에 나왔다. 출간되기까지 2년 4개월 걸렸다. 이 책의 초고는 2021년 4월에 완성했다. 목차를 받고 두 달 만에 초고를 썼다. 한 달 정도 퇴고를 거쳐 투고했다. 두 달 뒤 어렵게 계약을 했지만 6개월 뒤 파기됐다. 다시 퇴고했다. 1년 뒤 다시 투고, 퇴짜, 다시 퇴고 후 공모전 출품, 그리고 탈락. 공모전에 냈던 원고를 지난 6월 다시 투고했다. 다행히 출판사를 만났고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랜 시간 여러 과정을 거친 끝에 책이 되었다. 험난했던 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은 초고에 관한 내용이다. 두 달 만에 써낸 초고가 있었기에 2년 4개월 버틸 수 있었다. 엉성한 초고를 썼기에 여러 번 퇴고를 거쳐 제법 근사한 책이 될 수 있었다. 이 말은 누구든 초고만 손에 쥐면 책은 언제든 어떤 식으로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초고를 쓰는 게 초전도체 물질을 개발하는 것만큼 어렵고 복잡한 과정은 결코 아니다. 그저 손이 가고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이 나는 대로 써내는 걸로 충분하다. 초고를 쓸 때 명심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초고는 말 그대로 날 것이다. 아무런 양념이 처지지 않는 맹물이나 다름없다. 누가 먹어도 아무 맛 나지 않는다. 양념치고 간 보는 건 퇴고 때 하면 된다. 그러니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쓰면 된다. 마음껏 쓰는 데 머뭇거릴 이유 없다. 아무 말 대잔치처럼 마음에 담아 둔 말을 남김없이 꺼내놓으면 된다. 스스로를 편집하지 말자. 편집자는 퇴고 때 할 일이 많으니 잠시 쉬게 두자.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쓰고 싶은 말도 어느 정도 머리에 떠다닐 것이다. 잠자리를 잡을 때 빠르게 낚아채야 잡히듯, 떠오르는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재빠르게 써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각할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손가락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집중하면 된다. 무아지경,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몰입 상태다. 어쩌면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만큼 부끄럽다면 몰입을 경험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험해 보니 무아지경에서 제대로 쓴 글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은 퇴고에 손이 많이 가는 초고일수록 머뭇거리지 않고 쓴 글이 된다는 의미이다. 초고는 잘 쓴 글이 아니다. 초고는 잘 쓰기 위해 쓴 글이다. 머뭇거릴수록 초고답지 않는 글만 남을 뿐이다.
책을 쓸 때 가장 먼저 주제를 정해야 한다. 정해진 주제에 따라 목차를 짜고 집필에 들어간다. 정신없이 초고를 쓰다 보면 여러 생각들이 충돌한다. 충돌이 많을수록 내용도 풍성해지는 법이다. 뇌는 항상 더 나은 걸 찾으려고 무의식을 움직인다. 바로 찾아지는 답도 있지만 며칠 궁리 끝에 나오는 답도 있다. 이런 노력은 결국 독자를 위한 것이다. 내 글을 읽을 독자만 생각한다면 잠시도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생각을 멈추지 않을수록 초고를 쓰는 속도도 빨라지는 법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을수록 책에 담기는 내용도 다양해진다. 결국 독자만 생각한다면 초고 쓰는 게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직장 노예》는 2년 4개월 만에 세상에 나왔다. 그동안 다시 쳐다보기 싫을 만큼 퇴고를 거쳤다. 이 말은 2년 4개월 전 쓴 초고는 이미 제 모습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나처럼 2년 동안 퇴고하라는 말은 아니다. 내 말은 지금 쓴 초고가 그 모습대로 세상에 나올 일이 없다는 것이다. 퇴고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얼마든 할 수 있다. 만족하지 못하면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정이다. 단, 조건이 있다. 초고가 있어야 가능하다. 어쩌면 초고를 쓸 때 영혼을 갉아 넣었을 수 있다. 그렇게 써야 초고 다운 초고가 완성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초고가 초고의 모습으로 책이 되는 일은 절대 없다. 절대라고 표현했을 만큼 확신이 있다. 어느 출판사도, 어느 밀리언 셀러 작가도 초고를 세상에 낼만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보 작가의 초고는 어떻겠는가? 현실을 말하면, 퇴고를 수십 번 거쳐도 헤밍웨이만큼 써내지 못한다. 초보 작가는 그만큼의 역량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 초고가 필요하고, 그런 초고라면 마음껏 써도 된다는 말이다.
모든 초고는 퇴고를 거친다. 퇴고를 거친 초고는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다. 반대로 초고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단 하나의 경우가 있다. 쓰기를 멈췄을 때다. 초고로 완성되지 못한 원고는 퇴고할 기회도 없을뿐더러 출간도 남의 일이다.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는 USB에는 완성된 세 편의 초고가 담겨있다. 퇴고를 기다리고 있다. 엉성하게 써놓은 초고이지만 마음은 든든하다. 서두르지 않는다. 파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언제든 퇴고할 준비가 되어있다. 퇴고를 거치면 언제든 또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은 녹녹지 않다. 언제까지라고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래서 더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만약 완성이 안 된 초고라면 어떨까? 아마 초고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들지만, 과연 끝까지 쓸지 의심할 것 같다.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되고 마는 건 대부분 초고이다. 완성된 초고를 포기하는 작가는 웬만해서는 없다. 초고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초고는 가능성이다. 정성을 들이는 만큼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고만고만한 글이 되고 만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시작은 손에 쥔 초고부터다. 초고 한 편을 갖기 위해 몇 달 동안 멘털이 탈탈 털릴 수도 있다. 그래도 거친 초고 한 편이 손에 남는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초고를 처음 한 편 쓰기가 어렵지, 한 편만 쓰는 사람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초고는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그 성장의 끝은 정해지지 않았다. 계속 쓴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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