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이냐 아빠 노릇, 잘 좀 하자

by 김형준


채윤이는 올해도 학년 대표로 고양시 주최 초등학생 육상 대회에 출전한다. 작년에는 100미터 학교 대표로 출전에 고양시 전체 5등 했었다. 이번에는 선발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원하는 100미터 종목에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친구의 양보로 800미터 종목에 출전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 8바퀴 돌고 수업에 들어간단다. 저녁에 태권도 시범단 체력 훈련까지 힘들었나 보다. 며칠 전에는 눈물을 보였다. 힘들면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단다. 대신 대회가 있는 그 주에는 태권도는 안 가겠단다. 안 가는 대신 대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뭐든 하나에 꽂히면 최선을 다하는 채윤이다. 욕심도 많고 에너지도 넘친다. 운동에는 진심인 아이다.


지난주 중에는 달리기를 못했다. 토요일 아침 호수 공원에 갔다. 맑은 날씨에 볕은 뜨거웠지만 기온이 오르지는 않았다. 간간이 부는 바람과 찬 기운이 느껴지는 공기는 달리기에 적당했다. 오랜만에 8킬로미터를 목표로 정했다. 바른 자세를 배우고부터 달리는 재미가 붙었다. 속도도 제법 나고 호흡과 체력 안배에도 요령이 생겼다. 달리는 동안 생각했다. 채윤이는 올바른 달리기 자세를 배웠을까? 배웠으면 다행이지만, 안 배운 채로 연습하면 실력도 나아지지 않고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할 수 있다. 워낙 욕심이 많아서 성적이 안 나오면 스스로를 자책하는 아이이다.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9시 넘어 집에 들어갔다. 채윤이는 평소 면 잘 시간인데 깨어 있었다. 물어봤다. "채윤아, 학교에서 연습할 때 달리기 자세도 배웠니?" 배우지 않았단다. "아빠랑 연습하러 갈까? 자세 알려줄게." 잠깐 망설이던 아이는 옷을 갈아입고 따라나섰다. 단지 안 농구장으로 갔다. 먼저 연습한 대로 뛰어보라고 했다. 다음으로 설명 대신 내가 뛰는 모습을 보여줬다. 뛰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고, 차이를 비교해 보라고 보여줬다. 동영상을 보면서 차이점을 설명해 줬다. 장난치면서 설명을 듣는다.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다시 뛰어보라고 했다. 제대로 들었는지 처음과 자세가 달랐다. 차이가 나는지 물었다. "이전보다 빨라진 것 같은데 종아리가 조금 당겨." 연습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렇게 10분 남짓 연습을 마쳤다.


아내는 실습 가고, 큰딸은 친구와 스터디 카페에 갔다. 집에는 나와 채윤이만 있었다.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는 채윤이가 집에 있는 게 낯설었다. 침대만 뒹구는 게 지루했는지 나가고 싶은 눈치였다. 얼마 전 공짜로 받은 자전거와 킥보드가 생각났다. 내친김에 채윤이는 자전거, 나는 킥보드를 타고 집을 나섰다.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도 넣을 겸 호수 공원으로 갔다. 자전거 타는 방법을 친구한테 배워서 제법 능숙했다. 타이어에 공기를 넣고 분수 광장으로 갔다. 광장을 돌면서 채윤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빠 여기 한 바퀴 돌면 800미터 정도 될까?" 스마트 워치로 거리를 쟀다. 바닥에 난 표시를 따라 도니 400미터였다. 대회 때와 같은 조건이었다. 달리기 연습을 해보고 싶단다. 나는 시간을 쟀다. 채윤이는 알아서 아침에 배운 대로 달렸다. 체력 안배를 위해 중간에는 천천히, 마지막 100미터를 남겨두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게 보였다. 기록은 둘째치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연습 때보다는 속도도 체력도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스파이크 신고 말랑한 트랙을 달리면 지금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거야. 실수만 안 하면 충분히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거로 믿어."


채윤이와 나는 성향이 다르다. 나는 조용한 걸 즐기고 채윤이는 1초도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다. 큰딸과 아내도 나와 같다. 가족 중 채윤이 에너지를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주말이면 친구를 만나고 집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걸 찾는다. 어제처럼 함께 밖으로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나가는 게 귀찮으니 단둘이 무언가 한다는 게 어색했었다. 늘 채윤이에게 미안했었다. 아빠가 나서서 놀아준 적이 거의 없었다. 귀찮고 게으르고 할 일 있다는 핑계로 모른척했었다. 반대로 큰딸은 바깥 활동 없이도 알아서 노는 편이다. 속된 말로 세 끼 밥만 차려주면 하루 종일 알아서 시간을 보낸다. 사정이 이러니 내 입장에서는 채윤이도 우리에게 맞춰주길 바랐던 것 같다. 아니면 엄마 아빠가 자기에게 맞춰주지 못하는 걸 알고는 알아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일 수 있다. 채윤이도 집에 있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나았을 터다.


부모가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건 꼭 필요하다. 올바로 파악해야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물론 자라면서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부모의 손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을 때가 온다. 사춘기가 빨리 오면 그만큼 멀어지는 시기도 빨리 온다. 그전까지 자녀와 어떤 관계를 형성했는지 평생 남는다. 부모 역할에 충실해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했다면 사춘기를 지나 다시 돈독한 관계로 성장할 수도 있다. 반대로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다면 점점 더 틈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매번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애정을 표현해 주면 서로에게 바랄 게 없을 테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도 아이가 원하는 만큼 애정을 못 주는 게 현실이다. 행복감은 빈도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의미이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빈도가 높을수록 돈독해지는 게 사실이다. 나도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됐다. 대신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내 역할을 해주려고 노력해왔다. 빈도 대신 강도를 선택했다. 하루 동안 아빠와 함께 했던 것들이 오래 기억에 남길 바랐다. 욕심내면 이날 기억이 애착관계에도 영향을 주었길 바란다. 한편으로 나도 반성했다. 내 일도 중요하지만 성장기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분명 있다.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함께하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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