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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09. 2023

생각이 한계를 정하고,
믿음으로 한계를 극복한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도 한계에 갇히는 것도 생각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추상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는 이 말이 와닿지 않는다. 또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에 더더욱 실감하지 못한다. 대부분 남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내가 보는 남들 중에는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다.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내고, 끝이라고 여겼던 순간도 보기 좋게 극복해 내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딱 하나다. 스스로를 얼마나 믿느냐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한계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개인 저서 《직장 노예》를 쓰면서 과거의 나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10년 넘게 같은 직무를 하면서 여덟 번 이직을 했었다. 매번 실직할 때마다 다음 직장을 간절히 바랐고, 시간이 걸려도 어떤 식으로든 직장은 구해졌다. 물론 바라는 조건은 아니었다. 조건은 차치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몇 달 걸려 새 직장이 구해지고 출근하는 날이면 자신이 대견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고. 직장을 잃을 때면 늘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대한 회의와 다시 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었다. 여러 이유와 핑계로 또다시 직장을 그만둘 때면 여전히 부족한 나를 원망했었다. 견디지 못하고 참지 못했던 자신에게 화도 났었다. 하지만 원망하고 있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럴 에너지를 새 직장을 구하는 데 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럴 때면 숯에 남은 불씨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이전에도 새 직장을 구했고, 이번에도 반드시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때는 그런 태도가 나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 근사한 표현을 나에게 해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때다. 당장 벌어진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먼저였으니까.


새 직장을 구하기까지 적게는 한 달, 길게는 4개월 걸리기도 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했다. 이대로 헛물만 켜다가 포기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조건을 낮춘다고 해도 가족의 생계까지 담보 잡힐 수 없었다. 걱정이 걱정을 낳는 시기였다. 발버둥 쳐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생각 드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이런 태도가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얼마 안 가 결국 일자리가 구해졌다. 한계에 갇히는 것도 한계를 벗어나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압박이 나를 움직였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말한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고. 성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순간까지만 버티면 성공이 잡힌다는 공식이 있으면 모를까. 끝이 정해지지 않는 노력은 스스로 한계에 갇히게끔 유혹한다. 마치 곡괭이질 한 번이면 금광을 발견할 수 있는 찰나에 멈추는 것과 같다. 결국 유혹을 이겨내는 건 생각이다. 여기까지가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곡괭이질을 멈춘다. 반대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자신을 믿는 순간 금광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인생은 찰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화투판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이 외치는 "고", "스톱"에 따라 계속하기도, 멈추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우리 개개인의 삶이 화투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계속할지 말 지 결정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극한의 순간에도 계속할지 포기할지를 말이다. 누구도 대신 선택해 줄 수 없다. 오로지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어 주겠는가? 남들은 나를 믿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나를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믿음이 결국 자신의 한계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한계 짖지 않을 때 포기도 안 하게 되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바라는 걸 손에 넣는다. 내가 여덟 번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 이제까지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여기까지 왔다.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이것만 봐도 나에게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믿을 근거가 된다. 근거가 명확한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견고하면 한계 또한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도전을 하든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과를 얻게 된다. 이러한 믿음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믿음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확신만이 나를 성공으로 이끈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믿는지 묻고 싶다. 믿음의 크기는 어느 정도 인가? 믿음의 크기가 작다면 왜 그런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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