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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2. 2023

직장인 자기 계발 성공 하고 싶다면 '이것'하라

자기 계발의 시작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이런 식이다.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나?', '잘 살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질문이 꼬리를 물수록 의심은 커진다. 질문이 많다는 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이런 질문 없이 살았을 수도 있다. 질문이 있어도 모른척하고 살았을 수도 있다. 당장은 먹고사는 게 먼저였을 테니까. 그러나 살면서 반드시 질문과 마주할 상황은 오기 마련이다. 이 시기가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변화와 성장을 원치 않거나 삶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는 의미이다. 의심이 필요 없는 삶을 누구나 꿈꾼다. 불행히도 꿈은 꿈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현실에서는 반드시 어느 순간에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게 우리들이다.


이제까지 틈틈이 자기 계발을 했었다. 의심 없이 시작했다. 그때는 눈에 보이는 성과만 좇았다. 자격증을 따고 토익 점수를 올리고 업무 기술을 익히는 게 전부였다. 이런 것들에는 의심이 필요 없다. 그저 점수만 따면 그만이다. 자격증, 영어 점수가 곧 안정된 직장과 역량에 걸맞은 연봉을 보장해 준다고 믿었다. 결과적으로 바라는 걸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 안정된 직장도 연봉도 원하는 대로 얻지 못했다. 단순하게 생각했어다. 노력이 부족했었다고. 노력한 대로 성과가 나온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는 건 제대로 된 자기 계발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 삶에 왜 필요하고, 왜 그걸 위해 노력하고 투자해야 하는지 의심해 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 당시 매달렸던 것들이 전부가 아님을 의심해 보지 않았다.  


어떤 일의 시작에 앞서 의심이 먼저 든다. 결과에 대한 의문이다. 이때의 의심은 주저하게 만든다.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반대로 결과를 마주했을 때 드는 의심도 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의문이다. 성공에는 그다지 의문이 안 생긴다. 그러나 실패에 의문을 갖지 않으면 다시 시도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실패를 곱씹으며 성장을 꽤 한다. 실패를 의심할 때 궁금증이 생긴다.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탐구한다. 이런 과정이 처음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그래서 실패가 쌓일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 삶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자기 계발도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다. 변화를 바라고 성장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원하는 것들을 글로 쓰듯 뚝딱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변화는 더디고 성장은 느리다. 결과에 대한 확신도 없다. 언제까지라는 기한도 없다. 막연한 기대와 지루한 반복은 또 다른 의심을 부른다. 이 길이 맞고 방법은 틀리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누군가는 의심병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또 누구는 의심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당연히 후자가 원하는 변화와 성장에 먼저 닿는다. 의심을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의심한다고 당장 달라질 게 없다. 의심에 에너지 쏟지 말고 당장 해야 할 일에 힘을 보태는 게 현명하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 서서히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자란다. 스스로를 단련하는 것이다. 믿음이 커질수록 원하는 모습에 닿는 속도 또한 빨라진다.


요즘은 의심을 동력으로 활용한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해 오고 있다. 에너지를 한 곳에 몰아도 성공하기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직장을 다니며 두 개 세 개 일을 한다는 건 성공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어쩌면 성공할 수 없는 길을 간다고 의심할 수 있다. 만약 의심에만 먹이를 준다면 직장에 다니는 게 맞다. 하지만 직장은 떠나야 할 곳이다. 미리부터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떤 식으로도 병행해야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의심의 힘을 빌려야 한다.


도전이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욱이 직업을 바꾸는 과정은 더 그렇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확신도 없다. 적성이 맞는지도 불명확하다. 어떤 식으로든 검증이 필요하다. 자신의 자질을 의심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거다. 타인과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이다. 가능성도 의심의 대상이다. 오늘 이것밖에 못해도 내일은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 가능성은 타인이 알아주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믿는 만큼 가능성도 커진다. 의심의 순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기 계발과 안정된 퇴직을 준비하는 중이다.


의심은 불편하다. 자신의 민낯과 마주해야 한다. 외면할수록 변화는 더디게 찾아온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먼저 매를 맞는 게 낫다. 자신을 향해 당당하게 의심을 품는 것이다. 당장은 아프고 쓰려도 상처가 아물 즘이면 몰라보게 성장해 있을 것이다. 변화는 더디고 소리 없이 다가온다. 스스로 눈치챘을 때쯤이면 이미 누구 못지않게 성장해 있을 테다. 정말인지 의심이 든다고? 그럼 한 번 해보면 된다. 지금부터 자신을 의심해 보라. 지금 이 모습이 최선인가? 더 나아질 가능성은 없나? 원하는 게 있기는 한가? 하고 싶은 일 포기한 건 아닌가? 왜 내 시간 저당 잡혀 살지? 의심이 많아질수록 변화가 절실해질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른 척 살기에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다른 삶을 살 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4시 반에 눈 뜨고, 매일 글을 쓰고 책 읽고, 강의와 모임을 운영하고 책까지 낼 줄은 몰랐다. 할 수 있을까 의심에서 비롯된 것들을 지금 이렇게 매일 해내고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그에 맞는 가능성은 있다고 믿는다.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방법은 나에 대한 의심부터이다. 그러니 의심을 품고 의심을 믿고 의심에 도움을 받으면 분명 실패 없는 자기 계발을 해낼 수 있을 거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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