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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Sep 15. 2023

직장인, 사원증과 안녕을 고할 때

사원증을 발급받는 직장에 다녀보지 못했다. 가슴에 달린 사원증으로 지하철 개찰구 같은 출입구를 통과할 때의 느낌은 어떨까?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이유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다. 사원증을 단 직장인도 같은 이유로 출입구를 통과할까?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높은 직위? 많은 연봉? 자아실현? 안락한 가정? 지하철이 저마다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듯, 직장도 그런 곳일 테다. 원하는 곳에 닿는 건 언제쯤일까?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언제든 도착할까? 최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사원증은 어디든 닿을 수 있는 프리 패스일까? 아니면 원하는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족쇄는 아닐까?


취업 준비생에게 사원증은 쟁취 대상이다. 직장인에게 사원증은 소속감, 정체성, 자부심 등을 의미한다. 퇴직자에게는 과거의 영광이 고스란히 담겼다. 누군가는 사원증을 갖기 위해 이를 문다. 누군가는 사원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또 누군가는 사원증을 지키기 위해 밤낮 없다. 이유가 어떠하든 사원증에는 그만한 가치가 담겼다. 누구도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형태와 종류만 다를 뿐 누구나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다만 소속되어 주어진 일을 할지, 아니면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할지 다를 뿐이다.


시키는 일만 18년째 해오고 있다. 가슴에 사원증 대신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진 채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해 여태 무한 쳇바퀴를 도는 중이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발 뺄 용기 못 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쟁취하듯, 용기 있는 자가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가 보다. 이제까지의 직장 생활을 '굴레'라고 표현했지만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원치 않은 일을 했지만 그 덕에 안정된 가정을 꾸렸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게 버겁기는 해도 월급 덕분에 네 식구 잘 산다. 이렇게 버텨냈기에 남몰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 올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사원증이 프리 패스가 아님을 알았다. 직장 내 서열이 올라간들 이곳을 벗어나면 무로 돌아간다. 그때는 목에 걸린 사원증은 물론 온갖 수식어가 무의미해진다. 그때 가서 새로운 나를 만드는 건 늦을 수 있다. 시간과 환경에 쫓겨 섣부른 판단을 내리면 낭패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에 하나 그런다면 되돌릴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 테다. 그러니 빠르면 빠를수록 사원증의 환상에서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 2 막은 자기 이름의 사원증을 달자. 직장인 'ㅇㅇㅇ'이 아닌 직업인 'ㅇㅇㅇ'으로 말이다. 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면 바랄 게 없겠다. 간혹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며 시작한 일이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매여 사는 사람도 봤다. 그래도 행복하다면 다행이다.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깊이 고민해 보고 덤벼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자는 시간까지 빼앗기며 직장인보다 더 많은 시간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사람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이 어떤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 있다. 이 또한 내가 정말 바라는 삶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한치라도 의심이 든다면 원점으로 돌아가자. 중요한 건 사원증을 벗기 전에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원증을 방패 삼아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시도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월간 책방 대표 김형준' 또 다른 사원증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원이자 대표인 셈이다. 지시를 받지 않는다. 통제를 당하지도 않는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리 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계획에 안하무인에 규칙 없이 살지는 않는다. 내 나름의 규칙에 따라 하루를 보낸다. 월급쟁이 명함을 버리지 못해 반쪽짜리 대표이기는 하다. 절반은 남의 지시에 움직이고, 남은 절반은 내 의지대로 산다. 한쪽은 막바지 떨이 장사에 한참이고, 다른 한쪽은 전단지를 돌리면 이름 석 자를 알리는 중이다. 전단지를 돌린다고 물밀듯 일이 쏟아지지 않는다. 솔직히 그러길 바랐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냉정하다 못해 드라이아이스 수준의 냉기가 몰아친다. 수개월째 개점휴업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직장은 온실이요, 직장 밖은 지옥이라는 말을.


섣불리 사원증을 벗어던지는 사람 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제 손으로 사원증을 반납하는 사람도 있다. 또 멍하니 있다가 사원증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다. 당신이라면 셋 중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누구나 제 발로 걸어 나오길 원한다. 완벽하지 못해도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으니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준비할 테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섣불리 두 다리에 힘을 실었다가는 얼음이 깨지는 불상사가 생긴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다. 그렇다고 뒤에서 빨리 가라고 등 떠밀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속도에 맞게 준비해 가면 된다. 준비를 한다면 말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중이라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귀에 안 들어올 테다. 차라리 이유식 먹을 나이면 떠먹여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원증이 가슴에 있을 때 가슴 뛰는 일을 찾자는 의미이다. 가슴이 뛰는 일을 찾는다면 가슴에 사원증은 소명을 다한 것이다. 미련 없이 보내주자. 그리고 새로운 사원증으로 그 자리를 채우자. 당신은 어떤 사원증을 원하는가? 소속은 어디이며, 직위는 무엇인가? 남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는 무엇인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용기 낼 각오되었나? 이제는 자신을 믿고 용기 낼 때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원증의 마법에서 벗어날 준비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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