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선택하기 나름이다. 선택에 따라 감정의 형태도 달라진다. 감정 선택에 따라 관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관계 개선이 필요한 사이라면 우선 내 감정이 어떤 지부터 돌아봤으면 좋겠다. 상황에 적절한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으니까. 엊그제 이런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10킬로미터를 달렸다. 온몸이 뻐근했다. 땀에 젖은 옷도 무거웠다.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 앞 큰딸 방이 시끌시끌하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다. 흘끗 보니 방 청소를 하는 것 같았다. 정리라고 하기에는 물건 옮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있는 힘껏 내리치고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짜증을 소리로 표현하는 눈치였다. 큰딸은 요즘 중간고사 공부 중이다. 이번에는 타이틀을 걸지 않았지만 만점을 노린다고 목표를 말했다. 나도 아내도 군말하지 않았다. 달성하면 다행이고, 아니면 마는 거다. 굳이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았다. 큰딸은 아니었나 보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말이 줄어드는 눈치였다.
사과 하나를 잘랐다. 반 쪽은 내가 먹고 남은 반을 다시 반으로 갈랐다. 하나는 안방에서 게임 중인 둘째에게 줬다. 남은 하나를 들고 여전히 살벌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큰딸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 물건들과 실랑이 중이다. 어정쩡하게 자리 잡은 콘센트가 원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먼 물건들만 집어던지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왜 그러니?" 잔뜩 심술이 난 채, "콘센트 때문에 짜증 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자리를 덜 차지하게 세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콘센트를 세워 옆에 있던 스카치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움직이지 못하게 몇 개 더 붙였다. 테이프가 약하니 플러그를 뽑지 말라고 말했다. 문제가 해결됐다. 그러자 표정이 풀렸고 사과도 건네받았다.
누가 보면 되게 자상한 아버지처럼 보인다. 나도 내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될지 몰랐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똑같은 상황에서 짜증부터 냈었다. 짜증을 내는 큰딸이 못마땅했다. 제 멋대로 행동하는 걸 가만 두고 보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큰소리부터 쳤었다. 짜증을 짜증으로 받아쳤다. 그때는 내 감정이 더 중요했었다. 아이들이 짜증 부리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내 짜증으로 아이들 짜증의 눌러야 직성이 풀렸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잔뜩 주눅이 든 채 말없이 잠잠해졌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게 훈육인 줄 알았다. 아이들은 내 감정을 건드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됐다. 그게 아버지의 권위를 살리는 거라고 믿었다. 잘못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가 선택하는 감정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나면 물을 사용하면 안 된다. 오히려 더 큰 화재로 이어진다. 그때는 담요나 분말 소화기를 이용해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감정을 선택해야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다. 자녀와의 관계라면 당연히 부모의 감정 선택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아이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 테니까. 당연히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도 있다. 적어도 내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할 목표가 있다면 부모가 먼저 노력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감정을 선택하기로 했다. 앞서와 같은 상황에서 내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큰딸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봤다. 어떤 감정일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려고 했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했다. 감정보다 이성으로 행동하고 말했다. 효과가 있었다. 문제 해결도 쉬웠다. 감정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상황도 안 생겼다. 타격감이 부드러운 노트북 키보드처럼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감정은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녀와 관계가 그렇다. 부모라는 이유로 더 큰 빵을 먹어야 한다는 법 없다. 부모의 감정이 먼저라는 특권도 내려놓아야 한다. 어른이 왜 어른일까? 모든 면에서 아이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분명 감정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부모의 감정 선택에 따라 아이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감정 선택에 따라 아이와 관계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다. 쉽지 않겠지만 부모가 먼저 노력했으면 한다. 어른은 그래야 하니까. 지금에야 이렇게 말하지만, 한때 나도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었다. 그때를 깊이 반성하는 중이다. 반성하고 노력한 덕분에 두 딸과의 관계도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듯 희망이 보인다. 서로 합심해 새싹을 잘 키우고 싶다. 꽃도 피고 싶다. 그 꽃에서 나는 향기가 집안 가득 채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