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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Oct 01. 2023

일기를 쓰지 않을 이유 없다

무기력할 땐 무기력한 내용의 글을 쓰기 마련이다. 우울할 땐 우울한 글을 쓴다. 화가 날 때는 글에도 화가 잔뜩 담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러한 감정을 풀어내기 위한 것도 있다. 풀어내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할 테니까. 이 말은 어떤 감정이든 글로 쓰다 보면 그 감정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다면 보다 건강한 자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기는 하루의 기록이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기록하고 싶은 내용을 남긴다. 어제와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기록으로 남길 일은 있기 마련이다. 겪었던 사건을 기록하거나, 그 사건으로 인해 느낀 감정을 적거나, 그 일로 인해 보고 배운 점을 글로 남길 수도 있다. 일기의 효과는 기록하는 과정에 있다. 기록하면서 다시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그 상황을 들여다본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 생각, 본 것, 들은 것 등을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를 통해 가급적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하게 된다. 주관이 빠진 글을 통해 나를 객관화해 볼 수 있다. 일기를 쓰면 얻게 되는 장점이다.


몇 개월째 비슷한 내용을 일기에 쓰는 중이다. 연초부터 진행해 온 퇴사 프로젝트가 생각한 대로 잘 안 된다. 퇴사의 제1조건은 수입이다. 월급 이상의 현금 흐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직장을 다니면서 두세 가지 일을 하려니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 같다. 몇 달째 쳇바퀴 도는 것 같다. 답답한 심정을 매일 일기장에 적었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적는다. 할 수 있다는 각오와 생각한 대로 된다는 기대를 항상 기록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일만 생기고, 된다고 믿으면 되는 일만 일어나는 게 이치라고 했다. 이런 마음 가짐을 매일 기록으로 남기면 분명 잘 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믿지 않았다면 매일 일기에 적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징징거리는 아이의 투정처럼 보였다. 글의 내용도 부정적이거나 후회와 반성이 대부분이었다. 희망과 용기만 적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자칫 망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잘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글만 쓰는 것도 에너지를 빼앗는 행동이다. 과하면 안 하니만 못하다고 했다. 적절한 조절이 필요했다. 마음가짐에 따라 쓰는 글도 달라진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시궁창 같아도 스스로 마음먹기에 따라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보인다고 했다. 마음이 엉망일 때는 제 아무리 화사한 꽃도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반대로 행복할 때는 길가에 잡초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후회와 반성 같은 감정을 적는 것보다 잘 되지 않는 이유를 적어보는 게 오히려 더 필요할 때다. 감정은 적으면 적을수록 더 빠져들기 마련이다. 우울할 때 우울한 생각이 더 나는 것처럼 말이다. 보다 냉정해질 필요 있다.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감정을 쓰는 것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집중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는 시간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짧은 시간을 보다 더 가치 있게 사용하게 된다. 물론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빠져들지 않을 만큼 스스로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선택에 따라 결괏값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 마음이 심란한 요즘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퇴사 프로젝트가 이렇다 할 성과가 안 난다. 그렇다고 포기할 마음은 없다. 각오했던 과정이다. 한 번에 되면 그게 더 이상하고 자칫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일 수 있다. 느리고 돌아가더라도 튼튼한 기초를 만드는 게 목표이다. 그러니 조급해하고 남들과 비교할 필요 없다. 단지 스스로를 다잡을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과 각오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이제까지 나를 잡아준 게 일기이다. 매일 새벽 일기를 썼기에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인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잘못된 선택으로 틀린 길을 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매일 나를 알아챈 덕분에 여전히 희망을 품고 더 안정된 퇴사를 위해 하루하루 정진해 가는 중이다.


매일 달리고 계단을 오르고 팔 굽혀 펴기를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근육이 붙고 군살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인다. 몸이 건강해지는 건 눈에 보이지만, 마음이 건강한 걸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일기를 통해 알아챌 수 있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는 거다. 마음이 어떤지, 감정은 괜찮은지, 우울하지 않은지,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쉬고 싶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가 나를 알아채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다. 몇 줄이라도 쓰면 내가 보이고, 안 쓰면 아무것도 못 본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때 건강한 지도 알아챌 수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일기, 쓰지 않을 이유 없다.


몸이 건강해지면 바디프로필로 기록을 남기고,

마음이 건강해지면 일기장이 기록으로 남는다.

-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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